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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레저] 아이고(죽겠네) 다리의 서글픈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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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서 하늘길로 네 시간 반. 필리핀 남동쪽 바다에 34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 팔라우가 있다. 섬이 340개라니 상당한 넓이일 것 같지만 다 합쳐봐야 거제도보다 조금 큰 정도다. 인구도 2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름조차 익숙지 않은 이 작은 나라와 우리의 인연이 각별하다. 최근 한국인 관광객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팔라우> 글.사진=김선하 기자

*** 여행정보

■ 항공 및 패키지 상품=한국에서 팔라우로 가는 정규 직항편은 없다. 대신 아시아나항공에서 8월 24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두 차례 전세기를 띄운다. 하나투어(www.hanatour.com, 1577-1233) 등에서 여행객을 모집 중이다. 4박5일 일정은 109만~149만원, 5박6일은 119만~159만원(록 아일랜드 투어 포함).

■ 물가 및 언어=돈은 미국 달러를 쓴다. 팔라우어가 있지만 공용어인 영어로 대부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한국과 시차는 없다.

2차대전을 기억하는 섬 ▶ 징용 한국인 강제노동

팔라우의 수도인 코롤섬에는 현지인들이 '아이고 브리지'라 부르는 다리가 있다. 뜻은 우리가 잘 아는 그 '아이고'다. 이 다리는 일제시대에 징용당한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놓은 것이다. 혹독한 강제노동을 견디다 못해 '아이고 (죽겠네)'를 연발해 이런 서글픈 이름이 붙었다.

팔라우는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1914년부터 45년까지다. 가장 큰 바벨다옵섬에는 지금도 일본군이 사용하던 건물이 반쯤 무너진 채 곳곳에 서 있다. 건물 앞에는 녹슨 전차와 대포까지 그대로 방치돼 있다. 현지인들은 아직도 이 건물들을 자동차 정비공장 등으로 쓰고 있다. 섬에 남은 일본의 흔적은 이뿐이 아니다. 태고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한 원시림을 헤치고 걷다 보면 어느새 일본이 깔아놓은 오래된 철길이 나타나 여행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미군과 일본군의 격전지였던 펠렐리우섬 주변에선 전투기와 군함의 잔해까지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런 곳들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엔 대부분 들어 있지 않다. 보고 싶다면 현지에서 승용차와 모터 보트 등의 교통편을 알아봐야 한다.

또 다른 세상 '바다' ▶ 해파리 호수, 상어떼, 산호 팩

섬의 과거를 아는지 모르는지 팔라우 근해는 숨막히게 곱다. 잔잔한 옥빛 바다는 '그림같다'는 표현마저 무색하게 한다. 웬만한 바다는 죄 다녀봤다는 베테랑 여행자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유다. 아직 개발이 덜 돼 다른 유명 휴양지 같은 안락함이 다소 떨어지는데도 사람들이 몰리는 것 역시 팔라우를 감싸고 있는 바다 때문이다.

산호 머드 팩은 팔라우만의 매력이다.

대포·탱크…. 2차대전 잔해들을 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코롤섬에서 모터 보트로 30분을 달리면 록 아일랜드(Rock Islands) 지역이 나온다. 이름 그대로 '돌섬'이다. 송이버섯 모양의 크고 작은 돌섬이 점점이 박혀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섬의 주인은 나무다. 사람 하나 올라서기 힘들 것 같은 작은 돌섬에도 나무들이 몸을 맞대고 빼곡히 서 있다. 그러나 스노클링 물안경을 끼고 바다에 뛰어들면 곧바로 수면 위의 풍경이 시시하게 느껴진다. 우선 맑은 물 속에 날카로운 햇살이 작살처럼 꽂히는 광경이 일품이다. 형형색색의 열대어와 너비가 1m에 달하는 초대형 조개, 엄청난 규모의 산호를 보며 헤엄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파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구명 조끼만 입으면 쉽게 따라할 수 있다.

팔라우 스노클링의 압권은 해파리 호수와 상어떼 구경이다. 록 아일랜드 지역의 조그만 석회암 섬인 엘마르크에는 수만 마리의 해파리가 가득한 소금물 호수가 있다. 수백만 년 전에 해수가 고립돼 호수가 된 곳이다. 이 곳의 해파리들은 오랜 세월 천적 없이 지내 독성을 잃었기 때문에 만지거나 몸에 닿아도 안전하다. 몽실 몽실 몸을 움직이며 이동하는 핑크빛 해파리들은 귀엽게 느껴질 정도다. 상어 구경은 좀 더 아찔하다. 상어 출몰 지역에 배를 몰고 가 바다에 뛰어든 뒤, 현지인 가이드가 물에 던져 넣은 참치 덩어리를 먹기 위해 몰려든 상어를 스노클링 물안경을 쓰고 구경하는 것이다. 이곳 상어들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 안전하다지만, 막상 상어가 스르르 다가오면 물 속에서도 식은 땀이 날 정도다.

산호 머드(진흙) 팩은 다른 곳에선 불가능한 팔라우만의 매력이다. 록 아일랜드 지역의 밀키 웨이(Milky way)라 불리는 지점에는 오랜 세월 동안 깎여 나간 하얀 산호 가루가 바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가이드가 퍼 올린 '하얀 진흙'을 온몸에 바르고 풍덩 물에 뛰어들면 강한 햇살에 지친 피부가 금세 보송보송해진다. 팔라우에선 밤에도 즐길 곳은 바다뿐이다. 별다른 놀거리가 없다. 숙소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보트를 타고 밤낚시를 나서는 편이 훨씬 낫다. 초보자가 오히려 쑥쑥 낚는 경우가 많다.갓 잡은 고기를 즉석에서 회 쳐 먹는 맛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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