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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30년 환자살린 간호사도 허망하게 떠난 '통도사 참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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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하러 오면서도 설마 설마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다니…”

75세 운전차량 통도사 입구 돌진 사고로 13명 사상 #간호사 50대 딸 숨지고, 70대 어머니 중상 #60대 남편과 50대 후반 아내도 부상입어 #사고 현장의 교량 난간 3m 부서져 있고 #미쳐 수습 안된 신발 한켤레 방치돼 있어 #목격자 “갑자기 차량 돌진해 행인 덮쳐” #경찰, 운전 미숙으로 보고 사고경위 조사 #

12일 오후 8시쯤 울산 울주군 삼남면 서울산 보람병원 장례식장. 아내 성모(52)씨의 시신을 확인하자마자 남편 유모(55)씨는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유씨는 “아내가 불교 신자인 장모님과 함께 자주 절에 가곤 했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안 갔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었는데…”라며 “이렇게 갑자기 아내가 세상을 떠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탄식했다.

그의 아내는 부처님 오신 날인 12일 낮 경남 양산시 통도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숨졌다. 장모 조모(78)씨는 중상을 입고 울산 동강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위중한 상태다.

12일 낮 발생한 통도사 교통사고 현장. 사고차량 충격으로 도로 오른쪽 보도가 있는 교량의 석재 난간이 떨어져 나갔다. 황선윤 기자

12일 낮 발생한 통도사 교통사고 현장. 사고차량 충격으로 도로 오른쪽 보도가 있는 교량의 석재 난간이 떨어져 나갔다. 황선윤 기자

유씨에 따르면 그의 아내는 이날 오전 9시쯤 어머니와 함께 절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입시를 앞둔 딸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유씨는 “집에 돌아올 때가 됐는데도 연락이 안 돼 이상하게 생각했다”며 “평생 돈 번다고 고생만 하고 떠난 아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다시 울먹였다.

유씨 부부는 김해에 산다. 그의 아내는 경남 창원의 한 병원에 근무하는 수간호사다. 30년간 병원 수술실에서 환자를 살렸다. 유씨는 “수십년간 환자를 살린 아내가 허망하게 가버렸다”며 “고3인 딸에겐 어떻게 엄마의 죽음을 설명해야 할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 모녀의 신원은 뒤늦게 확인됐다. 119구조대가 서울산 보람병원에 다른 가족 없이 두 사람만 후송한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이 이날 오후 늦게 신원 확인을 위해 숨진 성씨 핸드폰에 ‘엄마’라고 적힌 번호를 누르니 수술 중인 어머니 핸드폰이 울려 모녀 관계로 확인됐다.

12일 낮 교통사고가 난 통도사 영축산문 위쪽 교량 아래 계곡에 석재 난간이 떨어져 있다. 황선윤 기자

12일 낮 교통사고가 난 통도사 영축산문 위쪽 교량 아래 계곡에 석재 난간이 떨어져 있다. 황선윤 기자

부상자 중에는 부부도 있었다. 울산에서 통도사를 찾은 남편 오모(62)씨와 아내 남모(58)씨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50분쯤 경남 양산시 통도사 정문인 ‘영축산문’에서 20m가량 떨어진 교량 쪽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교량은 영축산문을 통과할 때 2개이던 차로가 1개 차로로 좁아지는 곳이다. 이 1차로(일방통행로) 오른쪽에 보도가 있어 사람이 오간다. 운전자 김모(75)씨가 몰든 체어맨 승용차가 갑자기 오른쪽 보행로 쪽으로 돌진해 행인을 덮친 것이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 4명이 경상을 입었다.

12일 오후 현장을 가보니 교량 옆에 출입 금지를 알리는 노란 줄이 처져있고 그 옆으로 쉴새 없이 많은 사람과 차량이 오가고 있었다. 길이 10여m인 교량의 난간 중  3m가량은 부서진 채 2m 아래 계곡에 떨어져 있었다. 교량 한쪽에는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신발 한짝이 놓여있었다. 불교 신도인 듯한 한 할머니는 계곡을 바라보며 “부처님 오신 날 무슨 이런 날벼락이 있노”하며 두 손을 합장하기도 했다.

12일 낮 교통사고가 난 통도사 영축산문 위쪽 교량쪽에 신발 한짝이 수습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황선윤 기자

12일 낮 교통사고가 난 통도사 영축산문 위쪽 교량쪽에 신발 한짝이 수습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황선윤 기자

사고 당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피해가 컸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사고 현장을 수습한 조성남(52) 양산경찰서 관리계장은 “인근에서 ‘쾅’하는 소리가 들려 현장에 달려가 보니 차량 앞범퍼 쪽에 1명이, 주변에 여러 명이 쓰러져 있어 소방구급대에 연락했다”며 “차들이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서행하고 있었는데, 사고 차량이 갑자기 왜 속도를 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속도를 낼만 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찰이 공개한 사고 당시 3초가량의 동영상을 봐도 사고 차량은 앞차와의 간격이 어느 정도 벌어지자 갑자기 돌진하며 행인을 덮치는 것으로 나온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행인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했다. 경찰은 75세 고령 운전자가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양산·울산=황선윤·위성욱·백경서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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