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학습 시간은 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한영고는 깼다. “자율학습 시간에 복도에 나가 중얼거리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어요. 학생마다 공부하는 스타일도 제각각이니까요. 그런 학생들이 자유롭게 떠들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교실을 마련해주었죠.” 한영고 유제숙 교사가 설명한 '말하는 공부방'의 탄생 배경이다.
'학종 최강' 한영고 비결④ #떠들며 공부할 수 있는 '말하는 공부방' 개설 #자유롭게 토론하고 상의하며 사고력 키워 #'독서 토론' '또래 세미나' 등 다양한 토론
말하는 공부방은 방과 후 7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운영된다. 두 명에서 여섯 명이 팀을 이뤄 신청할 수 있다.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학습할 수 있다. 자리마다 화이트보드가 있어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쓰면서 토의할 수도 있다. 정숙한 야간 자율학습실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며 생각의 폭을 넓혀나갈 수 있다. 수행평가를 위한 조별 과제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30명 정원의 ‘말하는 공부방’에는 10~50명의 학생이 신청해, 때때로 옆 반을 터서 운영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말하는 공부방을 담당하는 김진화 교사는 “한 학생이 주제 발표를 하고, 다른 친구들이 그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고 난상토의를 하기도 한다. 발표를 하면서 자기 생각을 더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다. 학생들이 수업 때보다 훨씬 주도적으로 토의에 참여한다.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요즘엔 모둠 활동과 프로젝트를 통한 평가도 늘어났다. 길게 보면 학생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말하는 공부방은 ‘독토론(讀討論)’이라는 한영고의 학습 철학과도 궤를 같이한다. 독토론은 책을 읽고(讀), 토의하고(討), 논술하면서(論) 사고력을 키워나간다는 의미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학급별로 진행되는 독서토론, 매 학기 한 권의 책을 정해 깊이 있는 독서와 토론을 병행하는 ‘이래 그래 독서 토론', 화이트보드를 통해 시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NIE 토론', 친구들과 지식을 나눌 수 있는 ‘또래 세미나’, 토론 탐구를 격려하고 도와주는 ‘다빈치-넛지 수첩’,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유연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키우는 '글로벌 토크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토론과 발표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을 표현하며, 의사소통하며, 협력하는 방법도 키울 수 있다.
협업하며 의사소통하는 능력은 AI와 차별되는 인간의 고유 역량으로 점점 더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덕목이기도 하다. 유제숙 교사는 “아이폰도 인문학과 기술과 디자인이 하나로 합쳐진 결과다. 요즘 대학에서도 면접 때 학생들의 소통 능력과 협업 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협업과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