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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국회] '반공 지상주의' 우파 결속에 도움 안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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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과 그 밑에 몰려있는 주사파들을 빨갱이라 했습니다. 손학규, 고건, 이명박 등에도 빨갱이라 했습니다.”

소위 극우 논객으로 알려진 지만원의 말이다. 이 말로 인해 인터넷 게시판에서 때 아닌 반공 논쟁이 벌어졌고, 지금도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지만원의 이런 사고방식을 문제삼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 공성진의원이 구설수에 휘말려 있기도 하다. 이를 사이코적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하며 대립각을 세우다가, 자신이 해병대출신으로 해병대관련모임에 나가서 한 얘기들을 전하는 과정에서 해병대출신들을 폄하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발언을 한 것이다. 정작 문제의 핵심인 극단적인 빨갱이 콤플렉스에 대한 비판은 사라지고, 엉뚱하게 군관련 단체들과 대립각이 형성된 것이다.

공의원의 이러한 발언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해병대출신으로 해병대관련 모임에서 서로 허물없이 주고받는 얘기라 할지라도, 전혀 다른 상황에서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는 다른 반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 같다.

대령연합회에서는 공의원의 축출을 한나라당에 요구하고 나서기까지 하였지만, 사실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반공을 내세워 자기만의 잣대를 만들고 여기에 한치라도 벗어나면 누구든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지만원과 같은 반공지상주의가 과연 지금 우파들의 결속과 미래 승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동안 반공논쟁에서, 많은 사람들의 지적은 다같이 힘을 합해나가야 하는 이 시점에 왜 같은 편끼리 총질을 해대느냐는 점이었다. 이러한 지적은 타당하다. 우리는 그동안 우파의 분열로 두 번의 대선에서 패배하고, 10년간의 암흑기를 지나고 있다. 다음 대선승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핵심도 역시 여하히 우파의 분열을 방지할 것이냐는 것이다. 또 다시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으로 전선이 형성되는 것이 가장 우려할 점이다.

따라서 다음 대선에서는 좌파, 즉 빨갱이를 대척점에 세우고, 나머지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소위 극우라고 불리는 강경보수세력도 우파 결속의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지만원이 극우인가 하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극우도 우파도 아니다. 그는 자신만의 폐쇄된 사고속에 갇혀 아무데고 총질이나 해대는 빨갱이 콤플렉스 환자에 불과하다.

그가 빨갱이라고 지목한 이명박, 손학규는 우파가 내세우는 지도자중 한분이고, 김진홍목사는 새로운 우파운동을 표방하며, 우파의 결집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분이다. 이 분들의 과거 언행중에 지만원 혼자서 정한 잣대에 벗어난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을 빨갱이라고 몰아세우면서, 우파의 통합을 외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지만원이 우파의 결집이고 나발이고 자기 멋대로 아군을 향한 총질을 해댄다면, 우파 역시 지만원을 우파세력의 일부라고 인정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파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다음 대선의 우파의 대표주자로 거론되는 세분의 지도자 사이에도 이념적 차이를 분명 가지고 있다. 언론의 분석에 의하면, 박근혜가 비교적 오른쪽에 서있고, 이명박, 손학규가 상대적으로 왼쪽에 서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만원 따위가 빨갱이라고 몰아세울 만큼 그들이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에 어긋난 언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지만원은 이명박, 손학규를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순간, 수백만 우파 국민들을 모독한 것이다. 수백만명의 우파지지자들이 빨갱이를 지지하고 있단 말인가! 이를 두고 사이코라고 평가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평가가 아니다. 극우든 강경우파든 이런 자가 어떻게 우파라는 이름을 오염시킬 수 있단 말인가!

반공은 이념을 떠나 우리의 생활이다. 그런 점에서 반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무리 북한의 남침과 적화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반공은 그 자체로 우리의 안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무장이다. 미사일이나 전투기 같은 하드웨어적인 무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반공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적인 무장이다. 눈에 보이는 전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반공이라는 정신무장이 없으면 쓸모없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반공은 현실이며, 적어도 북한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지켜 가야할 우리의 소중은 가치이다.

따라서 반공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많은 반공단체들의 노력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나 반공의 틀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다는 점도 사실이다. 우리는 북한을 넘어 세계를 향한 새로운 이념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반공이후 우파의 새로운 이념으로서 자유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분명 자유주의는 미래 한국사회를 선진국으로 이끄는데 핵심 사상이 될 것이다. 해방이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해 왔지만, 실제 우리의 정치사나 경제사에 자유주의가 제대로 실천된 적은 한번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 서구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적으로는 냉전을 거치면서 자유가 제한되거나 훼손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경제적으로는 수정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얼룩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서구사회에서도 최근 이러한 허물을 벗고 자유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니 북한 괴뢰정권과 전쟁을 겪고, 남북한이 첨예한 군사적 대결상태에 있던 지난 50여년간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꽃필 것을 기대하거나, 피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극한의 빈곤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압축성장을 목표로 계획경제를 추진해 왔던 상황에서 자유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경제적 기적을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성취해 냈다. 우리는 이러한 성취를 밑거름으로 선진사회로 진입해야 한다. 그 선진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유일한 사상적 바탕이 바로 자유주의다. 자유주의를 통하지 않고 선진사회진입을 꿈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처럼 미래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이념적 지표를 모색해 나가자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해오고 있는데, 새삼 무슨 자유주의냐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그동안 제대로 자유주의를 해 본적도, 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다. 우리가 그동안 자유주의라고 교육받고, 체험하고, 세뇌받은 것들은 대부분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거나 사회주의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유주의는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다. 우리가 그동안 상식적으로 알아왔던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실제 구체적인 정책문제에 들어가면 자유주의가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실제적인 정책문제에 들어가면 대부분 자유주의와는 먼 사회주의적 대안들과 타협하게 된다. 자유주의는 때로 비정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은 자유주의의 문턱에서 천사의 얼굴을 한 온정주의와 사회주의의 유혹에 맥없이 무너지기가 일쑤이다.

얼마전 이 시대의 석학이라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도 케인즈를 거론하며 한미FTA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보인 바 있다. 그만큼 수정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주의의 영향이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 속에 깊게 박혀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그동안 정부의 역할과 규모는 확대 일변도를 걸어왔고, 국민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특히 발전된 사회일수록 국가가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바란다. 서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장애인에 대한 국가적 배려, 공정한 거래 등 정부의 역할은 천사의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그 어느 누구도 이에 반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기관의 역할 확대가 바로 자유주의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화려한 약속“들이 왜 ”우울한 성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점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여 나가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천사의 얼굴로 다가오는 온갖 달콤한 약속들의 이면에 어떻게 악마가 숨어 있는가를 배우고 전파해야 한다. 왜 당장 입에 쓴 고통들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가장 첩경이 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반공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일부이다. 반공과 자유주의는 취사선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두가지 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 망나니 정권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반공을 통하여 우리의 안전과 자유를 지켜나가야 하고, 다가오는 세계화시대 국가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우리는 자유를 학습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대선에서의 정권교체고,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우파의 단결과 결집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잣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싸잡아 “빨갱이”로 매도하면서 우파의 결속을 해치는 지만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는 다수의 우파를 모독하고 우파의 분열을 획책하는 우파의 적에 불과하다.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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