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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더 키운 천은사 입장료 폐지..."보시했다" vs "돈으로 막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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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호 04면

[SPECIAL REPORT] 사찰 관람료, 시민단체 vs 조계종 

설악산 신흥사 문화재 관람료 영수증. 성인 한 명당 3500원을 내야 한다. 김홍준 기자

설악산 신흥사 문화재 관람료 영수증. 성인 한 명당 3500원을 내야 한다. 김홍준 기자

언제부터인가 절이 산에 들어갔다. 인적은 길을 만든다. 오솔길이 생겼고 돌계단이 만들어졌다. 수백 년 지나, 그 길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천은사 입장료 폐지됐지만 … #조계종 “국립공원 일방적 만들어 #수행환경 훼손, 재산권 행사 제약” #시민단체는 “관람료 용처도 몰라” #입장료 둘러싼 갈등 끝나지 않아

지난해 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산적’이라는 말이 올라왔다. 국립공원 내 25개 사찰이 산 입구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보지도 않는 문화재의 관람료를 징수하는 걸 겨냥한 것이다. 관련 청원은 현재 66건. 국가권익위원회가 지난해 국립공원 관련 민원을 분석한 결과 관람료 징수 불만이 38.8%로 1위에 올랐다.

국립공원 면적 7%가 사찰 소유지

설악산 소공원 입구에 만들어진 신흥사 건물. 일각에서는 "신흥사의 일주문이 안쪽에 있음에도 이 건물을 산 입구에 새로 지은 이유가 문화재 관람료를 받기 위한 방편일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김홍준 기자

설악산 소공원 입구에 만들어진 신흥사 건물. 일각에서는 "신흥사의 일주문이 안쪽에 있음에도 이 건물을 산 입구에 새로 지은 이유가 문화재 관람료를 받기 위한 방편일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김홍준 기자

지난달 29일 지리산 천은사에서는 1600원씩 받던 입장료를 폐지했다. 1㎞ 떨어진 861번 도로 상에서 지리산 노고단으로 향하는 차량들을 대상으로 1987년부터 받던 돈이다. 2000년 참여연대가 제기한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에서 패소하자 천은사는 2011년부터는 관람료 대신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천은사 주지인 종효 스님은 “과거 정부에서 천은사 토지에 군사작전도로를 만들었고, 나중에는 관광도로로 사용했다”며 “문화재 보호와 수행 환경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입장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국민과 지역 주민을 위해 1000년 문화와 자연환경을 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에는 천은사 탐방로 조성, 천은사 운영 기반 조성사업 지원, 지방도 861호선 도로부지 매입 등도 포함됐다. 관련 비용이 45억 원으로 추정된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천은사 입장료 폐지가 다른 24곳의 국립공원 내 관람료 논란 해결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시민단체들 의견은 부정적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은 “푼돈 들인 걸 목돈으로 막고 끝내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 사무국장은 “돈을 들여 논란을 일단 잠재우자는 잘못된 방식”이라며 “다른 사찰도 관람료 문제 해결을 위해 이것저것 요구하고 나설 수 있는 선례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관람료 논란의 핵심은 279㎢인 국립공원 전체면적(해상은 제외)의 7%에 이르는 사찰 소유지다. 국립공원 중에서도 가야산은 37.5%, 내장산은 26.2%, 오대산은 17.8%로 사찰 소유지 비중이 크다. 개인 소유지까지 포함하면 내장산·가야산은 60% 정도가 사유지다.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땅을 사고파는 것은 물론, 산에 나무를 가꿔 돈을 버는 것 등이 모두 제한된다. 정부는 사찰 소유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관람료 명목으로 보전해줬다.

지리산 천은사 입장권. 천은사는 시민단체가 제기한 부당이득 청구소송에서 패소했음에도 문화유산지구 입자료를 계속 받아 오다 지난 4월 29일 폐지했다. 중앙포토

지리산 천은사 입장권. 천은사는 시민단체가 제기한 부당이득 청구소송에서 패소했음에도 문화유산지구 입자료를 계속 받아 오다 지난 4월 29일 폐지했다. 중앙포토

문제를 더 키운 것은 1970년 속리산에서부터 시작된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의 합동징수였다. 문화재 관람료는 문화재청의 문화재보호법에, 국립공원 입장료는 환경부의 자연공원법에 따른 것이다. 이후 2007년에 국립공원 입장료(1700원)가 사라졌다. 당시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2006년 국립공원 예산 1299억원 가운데 입장료 수익은 289억원이었다.

황평우 소장은 “입장료를 없애는 대신 세금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연 300억원 가량 보전해 주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국립공원 이용자가 아닌 모든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국립공원 운영비를 내게 된 셈이다.

유럽의 성당들은 부분 유료 개방도

861번 도로상에 있는 지리산 천은사 매표소. 지난 4월29일 입장료를 폐지했다. 사진=환경부

861번 도로상에 있는 지리산 천은사 매표소. 지난 4월29일 입장료를 폐지했다. 사진=환경부

문화재 관람료 갈등은 정부가 키운 측면이 있다. 합동징수를 할 때 국립공원 입구 매표소에 사찰 인력이 들어갔다. 하지만 정부가 입장료를 없애면서 산 입구에서 문화재 관람료만 받게 되자 “절에도 가지 않는데 돈을 내는 건 부당하다”는 민원이 폭증했다.

사찰은 종교시설이면서 동시에 전통 문화유산인 경우가 많아 딱 떨어지는 해법을 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시민단체들은 “한 해 500억원으로 추정되는 관람료를 어디에 쓰는지 전혀 모른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경우 성당은 기본적으로 종교시설이기 때문에 대부분 무료로 개방한다. 하지만 건설 비용 마련을 위해 예외적으로 입장료를 받거나(바르셀로나 사그라다파밀리아 등), 성당 자체는 무료로 개방하되 박물관·종탑·지붕 등 특정 시설을 관람하기 위한 비용을 받는 경우(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밀라노 두오모 등)가 있다. 미국은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지만 문화재 관람료는 없다.

국립공원 내 사찰들이 모든 등산객에게 관람료를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고 재산권이 묶인 사찰에 문화재와 국립공원 관리비용까지 떠넘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공학과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놓았던 ‘관람료를 받지 않는 대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전통문화 보존에 필요한 지원을 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해 봐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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