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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재판 마친 조현아 안으며 "엄마가 미안, 우리 애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를 받는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왼쪽)과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공판을 마친 후 나서고 있다. 이 씨와 조 씨는 2013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필리핀 여성 11명을 대한항공 직원인 것 처럼 허위로 초청해 가사도우미 일을 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뉴스1]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를 받는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왼쪽)과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공판을 마친 후 나서고 있다. 이 씨와 조 씨는 2013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필리핀 여성 11명을 대한항공 직원인 것 처럼 허위로 초청해 가사도우미 일을 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뉴스1]

"피고인은 회항 사건으로 구속되고, 아이들을 어머니한테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우미들도 같이 따라갔더니 오히려 어머니가 도우미를 고용했다고 기소까지 됐습니다. 어머니가 기소된 점에 대해 깊이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2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526호에는 어머니와 딸이 한 법정에서 서로 "미안하다"며 마음을 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날은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첫 재판이 잇따라 열렸다. 먼저 재판이 끝난 이 전 이사장은 법정을 빠져나가지 않고 방청석 맨 구석자리에 앉았다. 그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딸의 재판을 끝까지 지켜봤다. 조 전 부사장 측 변호인이 구체적인 가족사를 읊으며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할 때도 큰 표정 변화 없이 방청석을 지켰다.

딸 재판 지켜본 이명희, "엄마가 미안해"

조 전 부사장 측은 "지난달 부친이 스트레스와 지병 악화로 돌아가셨고, 남편으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해 아이들을 홀로 키워야 해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한데 어머니도 재판이 있어 육아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조 전 부사장은 재판부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피고인석에서 일어났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말을 시작한 조 전 부사장은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키우며 회사 일을 하다 보니 나름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고용했다"며 "법적 부분을 미처 숙지하지 못한 것을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난 뒤 딸이 피고인석에서 걸어 나오자 이 전 이사장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전 이사장은 방청석 쪽으로 걸어오는 조 전 부사장을 살짝 안으며 "엄마가 미안해, 수고했어"라고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우리 애기..."라며 잠시 말을 이어 갔다. 이 전 이사장이 한 손으로 조 전 부사장의 머리칼을 쓸어주자 재판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굳어있던 조 전 부사장은 살짝 미소를 띠었다. 조 전 부사장이 먼저 법정을 빠져나갔고, 이 전 이사장은 10여분 정도 더 법정 앞에 앉아 변호사들과 얘기를 나누다 법원 바깥으로 나섰다.

혐의 일부 부인한 이명희, 모두 인정한 조현아 

이 전 이사장 측은 이날 재판에서 "대한항공 비서실에 가사도우미가 필요하다고 부탁했을 뿐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가사도우미를 입국시키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전 이사장 측은 "재벌가 사모님이 모든 것을 총괄 지시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부탁만 하면 알아서 밑에서 초청해줬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그러면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체류 기간 연장은 직접 부탁했느냐"고 묻자 이 전 이사장은 "제가 직접 그 아이를 데리고 하라고 한 적은 없고요, 일하는 아이 패스포트(여권)도 회사에서 갖고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해주고…"라며 직접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는 취지로 답했다.

반면 조 전 부사장 측은 검찰이 범죄 혐의 등을 상세히 설명하자 "이 사건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깊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다만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규정이 어떻게 되는지 이런 부분은 인식하지 못해 법까지 위반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조 전 부사장이 혐의를 인정하자 검찰은 곧바로 구형 절차에 들어갔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에게 벌금 1500만원, 함께 기소된 주식회사 대한항공에 벌금 30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앞서 검찰은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에 대해 2013년부터 2018년 초까지 필리핀 여성 11명을 대한항공 연수생 신분으로 속여 한국으로 들어오게 한 뒤 가사도우미로 불법 고용한 혐의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재판부는 이 전 이사장에 대해서는 다음 달 13일 오후 4시 30분 대한항공 관계자 이모씨 등 2명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기로 했다. 조 전 부사장 측에 대해서는 다음 달 11일 오후 2시에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알려왔습니다 : 보도가 나간 뒤 대한항공 측에서는 이명희 전 이사장이 "우리 애기"라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조현아 전 부사장을 지칭한 것은 아니라고 전해왔습니다. 이 전 이사장이 조 전 부사장의 아들을 생각해 "우리 애기 잘 챙겨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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