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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음치불가] 백지영 … 파워 + 허스키 창법의 절정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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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연륜의 깊이가 동반되지 않고 단지 육체적으로 늙어 가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큰 슬픔도 없다. 새로운 작품을 통해 대중과 끊임없이 호흡해야 하는 음악인에게 나이와 연륜의 상관관계는 그래서 더욱 절체절명의 명제로 다가온다.

9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해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댄스음악'계의 디바처럼 군림했던 백지영. 그의 등장은 노래보다 비주얼을 중시하던 기존 댄스음악계를 뒤엎는 쾌거였다. 외모보다는 노래에 비중을 두는 일련의 노랫꾼들에 못지않은 탁월한 소리 구사와 파워풀한 창법, 거기에 허스키 음색으로 비음까지 섞어가며 애절한 감정표현을 극적으로 전달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사건'이 문제가 되어 음악계를 떠나야만 했다. 이것은 백지영 개인의 불행이자 국내 음악계의 손실이기도 했다. 이후 백지영은 컴백에 성공했고, 최근엔 새 앨범 [Smile Again]을 통해 주가 상승 중이다.

신작은 폭발적인 가창력을 구사하던 1, 2집 때와는 많이 다르다. 찌르듯 날카롭고 파워풀하게 뻗어 가는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전반적으로 음역은 낮아졌고 성량 또한 작아졌다. 더욱 큰 문제는 호흡에 있다. 파워풀하고 폭발적인 창법에서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던 백지영이었건만 이번 앨범에서는 호흡 자체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 대표곡 '사랑 안 해'를 비롯한 다수의 곡들에서 여실히 들을 수 있다. 기관지나 성대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노래를 하는 와중에 불필요한 바이브레이션이 자주 나오고 악절과 다음 악절의 연결도 매끄럽지 못하다. 결국 이러한 이상증세들은 자기관리에 소홀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새 앨범은 나이와 연륜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생각게 해 준다. 최근 여가수 상당수는 테크닉이나 기술로만 승부하려고 덤벼드는 경우가 많다. 반면 백지영은 신작에서 삶이 녹아 있는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테크닉이 아닌,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진짜 살아 있는 소리를 들려 주고 있는 것이다. 예전엔 "이래도 놀라지 않겠느냐"는 식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댄스를 노래했다면 지금은 인생, 삶, 바로 그 자신의 이야기와 마음이 묻어 나오는 노래를 하고 있다. 목의 건강성을 잃은 대신 인생의 깊이를 얻은 것이다. 몇 년 동안의 시련기가 이만큼 훌륭한 음악인으로 성장하는 데 오히려 큰 힘이 되어 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제야 비로소 백지영은 빼어난 가창력이라는 '외형'이 아닌 마음의 울림을 통해 '내면'을 노래하는 진짜 음악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앞으로 호흡법을 비롯한 제반 노래 기본기 강화 등 자기관리에 소홀하지 않는다면 백지영에겐 진정한 제2의 전성기가 코앞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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