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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파동 … 겉핥기 대응 더 이상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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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규모 학교급식 식중독 사건이 발생한 지 1주일여 만인 지난달 30일 국회는 과거 2년여 동안 방치해 온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허겁지겁 통과시켰다. 정부도 지난달 28일 총리 주재로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를 열고 그동안 퇴장당한 줄 알았던 식품안전처 설립안을 재빨리 꺼내들었다. 이번 결정들을 보면 정말 과학적인 원인 진단을 토대로 진지한 논의를 하고, 부작용과 비용이 가장 적으면서도 해결 가능성이 큰 방안을 신중하게 선택했는지 의문스럽다. 또 하나의 설익은 정책 실험이 될까 걱정스럽다. 요즘 시중에 나도는 말처럼 '찔러 보고 아니면 말고'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를 넘어선 풍요시대를 살고 있는 소비자들은 부족시대의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좋은, 더 편리한' 식생활을 좇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 신선편의.냉동냉장건조.건강보조.유기환경 식품 등 다양한 종류의 농축산식품이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수집.선별.세척.절단.박피.가공처리.저장.포장 등 '수확 후 관리기술' 발달로 농축산업은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생산.가공.유통을 통합하고 있다. 외식과 단체급식 서비스가 확대되고, 대형 할인 유통점도 늘어났다. 이런 변화들 때문인지 식품기인성 질병이 크게 늘고 있다.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만큼 불안감도 커져 간다. 이제 식품 위생안전 문제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가 됐다.

풍요시대의 식품 위생안전은 건강한 삶과 웰빙을 바라는 행복추구권 차원의 국민기본권이다. 모든 국민은 믿고, 안심하고, 즐겨 먹을 수 있는 위생적이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국가는 국토와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국방의무와 같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식품 위생안전 관리감독 의무를 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식품 위생안전 행정혁신을 위한 최근 조치들을 들여다보면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학교급식의 위생안전과 안전한 식자재 공급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보건복지부는 어디로 가고, 비전문가들인 교육인적자원부.교육청.학교가 책임지게 한 것은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조치다. 설립된 지 겨우 10년 된 식품의약품안전청을 폐지하고 총리 산하에 식품안전처를 새로 설립해 각 부처의 식품 위생안전 관리부서를 모두 통폐합한다는 발상도 문제다. 의약품 안전관리는 손을 놓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전문성을 가진 농업부서를 중심으로 밭에서 밥상까지 생산.가공.유통의 모든 단계에서 위생안전 통합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요즈음의 세계 추세에도 크게 어긋난다. 1994년부터 4년에 걸친 격론 끝에 정말 어렵게 통합해 이제 겨우 자리 잡은 축산 식품위생 안전조직을 또다시 흔들어 대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이제부터라도 원점에 다시 서서 국민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한 최선의 길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대통령 식품안전위원회'를 설치해 국가적인 위생안전 방안을 책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소비자 농업시대에 걸맞게 농림부를 '농업농촌식품부'로 전면 개편해 농축산식품에 대한 위생안전 관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도 모든 먹거리와 의약품의 생산.서비스에 대한 위생안전을 최종 책임지는 부서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

최양부 전 주 아르헨티나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