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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2002…개최국 결승행 좌절·격려 4년 전 한국과 너무 닮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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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어쩌면 4년 전과 이렇게 비슷할까. 러닝 타임(90분과 120분), 최종 스코어(0-1, 0-2)만 다를 뿐 월드컵 개최국의 4강 탈락 장면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 같았다.

2002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한국은 8강전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누르고 4강에 올랐지만 준결승에서 독일에 아쉽게 져 결승전이 열리는 요코하마 입성의 꿈을 접었다. 2002년 한국을 울렸던 독일도 이번 대회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 승부차기 승을 거두고 4강에 나갔다. 그렇지만 독일도 이탈리아에 연장 막판 연거푸 골을 허용해 '베를린 진군'에 실패했다. 준결승이 열렸던 곳(서울 월드컵경기장-도르트문트 베스트팔렌 경기장)이 6만5000명을 수용하는 축구전용구장이라는 점도 같다.

이탈리아 델피에로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가는 순간 주심은 종료 휘슬을 불었다. 독일 선수들은 일제히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승자를 축하하는 노래 'Stand up for the champion(챔피언을 향해 일어서라)'이 울려 퍼졌지만 패자인 독일 관중이 일어설 리 없었다. 망연자실해 있던 독일의 클린스만 감독이 선수들을 향해 다가갔다. 관중석에서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함성이 퍼져 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주장 발라크가 몸을 일으켰고, 선수들도 따라 일어섰다. 독일 팬도 모두 일어났다. 왼쪽 골대 뒤의 관중석에 인사를 한 선수들은 감사의 표시로 손뼉을 치면서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발라크는 애써 웃으려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었다. 전광판에는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여성 팬이 비쳤다. 리버풀 팀 응원가로 쓰인 'You will never walk alone(여러분은 혼자가 아니에요)'의 장중한 선율은 합창으로 바뀌었다. 선방을 거듭했던 골키퍼 레만이 마지막까지 손을 흔든 뒤 라커룸으로 사라졌다.

2002년 때도 그랬다. 경기가 끝나자 한국 선수들은 전부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침묵이 흐른 뒤 어디선가 "대~한민국" 구호가 울려 퍼졌고 "오~필승 코리아" 합창으로 이어졌다. 그 소리를 듣고 이운재를 시작으로 선수들이 하나씩 일어섰다. 관중은 눈물을 삼키며 최선을 다한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를 격려했다.

한국은 터키와의 3~4위전을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3~4위전'으로 장식했다. 독일도 멋진 피날레로 대회를 마감할 수 있을까.

도르트문트=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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