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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긴급 좌담 "한국 내놓을 만한 카드 없는 게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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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정세에 파장을 몰아 오고 있다. 북한이 왜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등을 점검하기 위해 본사 김영희 대기자의 사회로 서울대 정치학과 장달중 교수,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가 긴급 좌담회를 했다.

본사 김영희 대기자(中)의 사회로 서울대 장달중 교수(右)와 동국대 고유환 교수가 북한 미사일 발사 사태를 진단하는 긴급 좌담을 하고 있다. 좌담회는 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안성식 기자

▶김영희 대기자=북한이 왜 이 시점에서 미사일을 발사했을까 궁금하다.

▶고유환 교수=우선 선군 정치라는 내부 사정을 들 수 있다. 외부 압력에 굴복해 발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했을 것이다. 외부 사정은 미국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냉담했고, 5월부터 진행됐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도 시큰둥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대화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결국 벼랑끝 전술로 미사일 발사를 강행, 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본다. 6자회담의 틀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보자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장달중 교수=북한은 핵카드만으론 미국과 대화가 힘들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또 미국이 이란에는 평화적 핵무기를 인정하고 협상 자세를 보이면서도 북한에는 그렇지 않은 것도 싫었을 것이다. 결국 핵카드가 안 되니 미사일 카드를 흔든 것이다. ▶미사일 7개가 다 정확히 한 곳에 떨어졌고 ▶목표가 미.일 본토가 아닌 점 등은 ▶북한 미사일의 성능이 괜찮음을 보여주고 ▶이를 미.일에 과시하면서 ▶동시에 미국에 대한 마지막 카드로 흔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19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 5일 뒤 헌법 수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미사일 발사도 7차 당대회를 앞둔 국내용 조치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증거는 없다.

▶김=개량형 대포동 미사일을 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영향이 있을까.

▶고=북한 미사일은 사정거리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지는데 장거리가 실패했다면 대미 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다. 또 내부적으로는 책임론이 나올 것이다.

▶장=실패로 단정하긴 이르다. 미국을 겨냥했지만 중간에 의도적으로 그쳤을 수도 있다. 고도의 협상 전략일 수 있다.

▶고=1차 대포동 미사일 발사 때는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번에는 6기 이상의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했다. 중.장거리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했다는 것은 능력을 국제사회에 과시하자는 것이다. 과거와 본질적으로 달라졌다.

▶김=미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유엔 안보리도 열릴 예정이다.

▶장=미국.일본의 대북 압박이 강화될 것이다. 일본은 이미 만경봉호 입.출항 금지 조치를 취했다. 곧 대북 송금 제한 같은 금융 제재도 나올 것이다. 일본은 미사일 발사로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강경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일본과 미국에선 이번 사태로 강경파가 득세할 것이다.

▶고=이번에 발사한 미사일 가운데 5기가 일본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일본은 '200여 기의 미사일이 동시에 일본을 겨냥해 발사될 수 있다'고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군사 대국화,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 강화로 이어나갈 것이다. 미국에선 강경파가 강해지겠지만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으로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 데 대한 비판 여론도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가면 직접 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북한이 이것을 노렸을 수 있다. 제2의 페리 프로세스를 겨냥했다는 뜻인데 지금은 클린턴이 아닌 부시 행정부라서 쉽지 않을 것이다.

▶김=대북 제재가 더 강화될 수 있나.

▶장=그렇다. 대북 최대 원조국은 미국이다. 미국의 영향 아래 있는 국제기구도 많다. 인도적 원조도 힘들어질 것이다. 북한 편을 들어온 중국이 난처해지고, 한국의 입지도 좁아지게 되며 결국 북한에 굉장한 타격이 될 것이다.

▶고=북한도 이를 계산했을 것이다. 북한은 버티는 데 이력이 나 있기 때문에 압력이 있어도 부시 행정부의 남은 2년 동안 더 버티기로 나가자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장=상당히 위험한 판단이다. 북한이 압력을 받기는 했지만 남북 교류 등을 통해 경제가 나아졌다. 그런데 미국의 압박이 강해지면 이게 막히면서 김정일 체제는 통치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도 왜 강행했는지 의문이다.

▶김=중국의 입장이 곤혹스럽게 됐다.

▶장=이번 사태로 가장 타격받은 나라는 중국이다. 최근 비공식 6자회담을 준비해 온 중국은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2008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은 대미 협조가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대북 설득 등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

▶고=미사일은 미국과 일본을 향했지만 떨어진 곳은 중국이라 할 만큼 중국의 피해가 가장 크다. 이번 사태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체면과 위신이 손상됐기 때문에 중국의 대북 지원도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북한은 위험한 초강수를 둔 것이다.

▶김=한국은 미사일 발사를 잘 몰랐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본보다 안보회의를 늦게 소집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더구나 5월 노무현 대통령은 몽골에서 "북한에 더 많이 양보하겠다. 제도적.물질적인 지원을 조건 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져 한국 입장은 어려워졌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도 알맹이가 없다.

▶고=2004년 11월 '북핵이 자위수단일 수 있다'는 취지의 LA 노 대통령 발언 뒤인 2005년 2월 북한은 핵 보유를 선언했다. 이번에도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 뒤 미사일을 발사해 남북 당국 간의 신뢰에 손상을 입혔다. 그러나 정부 성명이 약한 것은 아니다. 미사일 발사를 도발 행위로 강력 비판했고,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장=그러나 남북 관계 중단까지 각오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와 국민은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에 합의하고 있다고 본다. 과격 대응을 하면 긴장이 고조될 것을 국민은 우려한다. 이번에 북한에 강경 메시지를 보냈지만 근본적으로 온건 유화 정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색 국면으로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고=북한에 강온 대립이 있다면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온건파의 입지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19차 남북 장관급 회담도 예정대로 해야 하며 남북 교역과 협력도 계속돼야 한다. 다만 대북 지원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이미 결정된 비료 지원은 해도, 그렇지 않은 식량 지원은 미사일 문제와 연계해야 한다.

▶김=한.미, 한.일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시점에 사태가 터졌다.

▶장=일본과의 관계에서 독도 주권을 찾는 것도 중요하나 큰 안보의 틀 속에서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전략적 우선순위에 혼돈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일 공조다. 국민 여론이 어떻든 한.미.일 공조로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점을 이번 기회에 국민과 북한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김=9월 한.미 정상회담까지 대책을 기다릴 여유가 있을 것으로 보나.

▶장=급박한 상황 전개는 없을 것이다. 미국 압력은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군사적으로 급박하게 느낄 게 없다'는 게 미.일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또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미국 편에 서면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된다. 대치 국면도 위험하다. 어렵겠지만 냉각기를 갖는 것이 북한을 학습시키고, 국내 여론도 고려한 정책이다.

▶고=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근본적인 대북정책 재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정책 일관성을 잃어 버리면 문제 해결 이후 연속성을 발휘하기 어려워 선택의 폭은 좁다. 대북 지원과 관련된 연계가 유일할 것이다.

정리=유철종 기자,
김걸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참석자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장달중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사 회 : 김영희 대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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