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금수회의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난데없이 ‘동물국회’의 주인이 된 국민은 착잡하다. 영역 다툼 같은 몸싸움은 가관이었다. 네 걸음 남짓한 너비의 국회 복도는 정체불명의 냄새로 가득 찼다. 우스꽝스럽게 뒤엉켰던 ‘반인반수(半人半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십중팔구 ‘나는 누구? 여긴 또 어디?’라는 속말을 하며 수치심을 참았을 것이다.

2012년 ‘몸싸움 방지법’ ‘국회 선진화법’이라 불리던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도 그런 ‘부끄러움’의 영향이 컸다. 외신에 등장한 한국 국회의 자화상은 법 개정에 속도를 더했다. 2011년 11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루탄 폭파범(bomber)은 기소될까’라는 제목으로 김선동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사건을 보도했다. 기사엔 “위원회 문을 부수려고 쇠톱과 해머를 쓴 의원도 과거에 처벌받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이 국회 운영위를 통과하던 날(2012년 4월 17일) 위원장이자 여당 원내대표인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은 이런 말을 회의록에 남겼다. “… 국민들께서 여러 번 지적한 바와 같이 물리적 충돌 없이 제도적인 절차에 의해서 원활하게 처리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더욱 활성화되는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 최종 목표는 품위 있게 일할 수 있는, 열심히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7년 전의 기대와 반성은 다시 부끄러움으로 돌아왔다. 선진화의 첨단 장치인 ‘패스트트랙’을 다루기엔 정치인들은 여전히 과거의 한계와 불신에 갇혀 있다. 금수(禽獸·날짐승과 길짐승, 즉 모든 짐승)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실패 직전이다. 이런 식이라면 우화소설 ‘금수회의록’(인간 세계의 부조리를 동물의 시선으로 풍자한 1908년의 신소설)의 제목을 국회 회의록에 붙여줘야 할 판이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