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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환·권은희 교체…33년 만에 경호권 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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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이 25일 국회 의안과에서 패스트트랙 관련 법안이 팩스로 접수될 것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이 25일 국회 의안과에서 패스트트랙 관련 법안이 팩스로 접수될 것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가 25일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 과정에서 격렬한 물리적 충돌을 벌였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은 “입법 쿠데타”라며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 설치 법안 제출을 실력으로 저지했다. 국회에서 여야 간 폭력사태가 발생한 건 2011년 한·미 FTA 충돌 이후 8년 만이다.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은 1986년 이후 처음으로 경호권을 발동했다.

범여권 패스트트랙 밀어붙이기 #8년 만에 국회서 여야 폭력사태 #하루종일 난장판 된 국회 #문희상, 바른정당계 면담 요청 거절 #의안과·회의실·채이배 의원실 등 #한국당 수십명씩 몸싸움하며 저항 #범여권 특위 개회 시도, 한밤 충돌

이날 충돌의 한복판에 선 건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였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는 사개특위 소속 오신환 의원을 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한 데 이어, 이날 오후 권은희 의원을 또다시 임재훈 의원으로 사보임하는 초강수를 뒀다. 권 의원이 공수처법 협상안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권 의원은 평소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는 건 반대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 바른미래당에선 14명의 의원이 김 원내대표의 일방적인 사보임에 항의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의안과를 봉쇄했던 이날 오후 7시쯤 처음으로 큰 충돌이 벌어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의안과에 팩스로 제출했다.

팩스 사보임, 병상 결재, 의원실 감금, 119 출동 … 연이틀 막장

바른미 래당 오신환 의원이 같은 날 국회 의사과에서 자신의 사보임 신청서 제출이 확인된 직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바른미 래당 오신환 의원이 같은 날 국회 의사과에서 자신의 사보임 신청서 제출이 확인된 직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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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은 의안과 팩스가 고장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민주당 원내대표단이 의안과를 방문했다.

하지만 한국당 의원들이 이들의 진입을 막아서면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병원에 입원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며 방호과 직원들도 현장에 합류해 ‘2차 충돌’이 빚어지며 의안과 주변이 난장판이 됐다.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25일 창문을 통해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25일 창문을 통해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당은 “의회 치욕의 날이다. 오늘 대한민국 국회는 죽었다”(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불법 사보임에 불법 접수다. 국회에 부끄러운 신기록이 생겼다”(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의원들도 “김관영 원내대표가 추악하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대한민국을 조롱하고 농락했다”(오신환 의원)며 저지 투쟁을 예고했다.

민주당은 오후 9시가 넘어서자 이틀에 걸쳐 제출한 법안 4개가 모두 접수된 것으로 간주하고 패스트트랙 안건 처리를 위한 사개특위(9시)·정개특위(9시30분) 개의를 시도했다. 한국당이 본관 2층 회의장 봉쇄에 나서며 또다시 충돌이 벌어졌다. 정개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현장을 찾아 공방전에 가세했다. “왜 숫자로 밀어붙여!”(장제원 의원), “당신들이 회의에 들어왔어야지”(심상정 정의당 의원)라며 고성이 오갔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의원실 점거에 반발한 채이배 의원이 신변 보호를 요청해 출동한 경찰과 119대원이 의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의원실 점거에 반발한 채이배 의원이 신변 보호를 요청해 출동한 경찰과 119대원이 의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한국당·바른미래당 일부 의원 총력저지=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이 패스트트랙 총력 저지에 나서면서 이날 국회는 하루 종일 난리통을 방불케 했다. ‘패스트트랙 전쟁’의 총성은 바른미래당에서 먼저 울렸다. 오신환 의원의 사개특위 사보임계 접수를 막기 위해 전날(24일) 국회 의사과를 점거했던 바른정당계 의원들(유승민·이혜훈·오신환·유의동·지상욱·하태경)은 오전8시30분 의사과에 집결했다.

그러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사보임계 팩스 제출이라는 우회로를 택해 ‘인간 방어벽’을 뚫었다. 현장에 모인 의원들은 9시30분쯤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 국회의장실로 이동해 사보임계 복사본을 확인한 뒤 문희상 국회의장이 입원한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문 의장이 접견을 원하지 않는다”는 병원장의 설명에 접견실 밖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오른쪽)·백혜련 의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 법안을 접수하기 위해 의안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표창원(오른쪽)·백혜련 의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 법안을 접수하기 위해 의안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이 시각 문 의장은 병실에서 사개특위 위원 사보임계(오신환→채이배)에 서명하고 있었다. 국회 의사국장이 직접 병실을 찾아 문 의장에게 보고 후 서명을 받았다. 오전 11시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허탈해하며 국회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당 의원들은 오전 8시30분 긴급의총을 마친 직후 패스트트랙 길목 곳곳에 흩어져 ‘게릴라전’을 펼치며 농성했다. 먼저 공수처법 등 법안 제출을 막기 위해 오전부터 의원 6명이 국회 의안과를 점거했다. 회의 개최를 막을 목적으로 선거법·공수처법을 논의할 가능성이 큰 회의실 두 곳(본관 445·245호)에도 의원과 보좌진을 20여 명씩 배치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 본관을 돌며 야전사령관처럼 농성 중인 의원과 보좌진을 독려했다.

오신환 의원 사보임이 확정된 오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국당보좌진협의회는 회원들에게 “국회 본관으로 집결해 달라”는 단체문자를 발송했다. “노끈이나 쇠사슬로 회의실 문을 묶자”며 대책을 논의하는 이도 있었다. 보좌진이 대거 합류하면서 한국당의 방어선은 한층 두터워졌다.

의원실을 빠져나온 채 의원과 김관영 원내대표(왼쪽)가 국회운영위원장실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의원실을 빠져나온 채 의원과 김관영 원내대표(왼쪽)가 국회운영위원장실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경록 기자]

특히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실(의원회관 633호)이 격전지였다. 한국당 의원 11명이 ‘인의 장막’을 치며 감금사태로까지 비화했다. 채 의원의 회의 참석을 막기 위해서였다. 채 의원은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줄곧 제지당했다. 결국 채 의원이 직접 112에 신고해 서울 영등포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현장에 출동했다.

채 의원은 이 과정에서 의원회관 6층에서 30㎝ 남짓한 창틀로 얼굴을 내밀고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초유의 ‘창틈 기자회견’에서 채 의원은 “창문을 뜯어서라도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오후 3시15분 안전사고를 우려한 한국당 의원들이 농성을 풀면서 채 의원은 공수처법 논의가 진행 중인 국회 운영위원장실로 직행했다.

나경원 자유한국 당 원내대표가 의안과 앞에서 국회 직원들의 진입을 막 고 있다. [뉴스1]

나경원 자유한국 당 원내대표가 의안과 앞에서 국회 직원들의 진입을 막 고 있다. [뉴스1]

◆선진화법 이후 첫 대규모 몸싸움=2012년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은 ‘누구든 의원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 출입하기 위해 회의장을 출입하는 것을 방해해선 안 되고(148조), 회의 방해 목적으로 부근에서 폭력행위를 해선 안 된다(165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또 이로 인해 5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을 경우 피선거권이 최하 5년간 박탈될 수 있어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는 조항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이날 상황이 국회 사무처를 중심으로 일어난 만큼 선진화법 적용을 피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사개특위·정개특위 회의 방해 목적이 강했던 만큼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법 적용 여부를 두고 여야 간 공방이 일 가능성도 있다. 일단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직자들에게 채증을 지시했다. 단 1건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영익·윤성민·이우림 기자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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