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문혁 담담하게 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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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혁명은 수많은 삶을 휴지처럼 구겨놓는다. 잘못된 관념에 기초할 때 혁명은 이미 재앙에 다름 아니다.
영화『부용진』(8일∼8월27일 호암아트홀)은 중국현대사의 치부인 문화혁명을 담담하게 고발한다.
혁명은 어리석음의 연속이었다. 어리석음의 파고가 밀어닥친 남단의 마을「부용진」. 사람들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반과 음해, 절망과 체념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남편이 처형당하고 재산마저 몰수당한 쌀 두부장수 호옥음(「류샤오칭.」분)은 이후 16년간 절망 어린 두려움에 떨면서도 냉소적 인텔리 진서전(「쟝웬」분)의 헌신적 사람에 마음을 바친다.
「쉐칭」감독은 호옥음의 비극을 통해 광분하는 혁명을 냉철히 주시하다 마침내 휴머니즘의 승리라는 극적 반전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등소평 체제가 들어선 후 평반(반 혁명분자로 낙인 찍혔던 사람들의 명예회복 작업)과정을 보며 객석은 허탈감과 함께 치미는 분노를 맛본다.
혁명이란 관념의 모래성은 무너졌다. 그러나 빼앗긴 명예를 호옥음은 절규한다. 『남편을 살려내라.』
「쉐칭」감독은 정통 로망의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잘 짜여진 구성, 계산된 영상, 이를 냉정하게 지키는 카베라 워크는 이 영화에 강한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그러면서 그는 스토리 전개를 다치지 않는 과감한 서사적 압축·생략과 낙관적 터치로 자칫 리얼리티에 머무를 관객의 감성을 한 단계 위의 휴머니티 세계로 끌어 올렸다.
「류샤오칭」의 빛나는 눈의 연기는 압권이다.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붉은 뺨과 반짝이는 눈을 잃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숭고한 사랑의 힘을 느낀다.
이른 새벽, 골목길 청소원으로 전락한 호와 진이 권력의 부스러기에 급급 하는 왕추사(「자쉬빈」분)를 골탕먹이는 장면에서「쉐칭」감독은 그녀의 눈을 빌려 한심한 혁명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해외 매스컴들이 이 영화를 중국판『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평했듯이 여주인공 호의 운명은『바람과…』의 「스카렛·오하라」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그들을 우롱한 남북전쟁과 문혁이 휩쓸고 간 고향에서 그녀들은 고향의 흙을 쥐고 살아갈 뿐이다.
당직을 고사하고 호옥음과 두부를 파는 진서전과 미친 왕추사가 혁명을 부르짖는 라스트신의대비는 이 영화의 따스한 우의로 길이 기억될 듯하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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