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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라와 김동수 '욱'하는 바람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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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메이저리그에 로빈 벤투라라는 선수가 있었다. 그는 대학(오클라호마 스테이트) 때부터 스타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미국 대표팀 3루수로 금메달을 따냈으며, 최고 아마추어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스파이크상을 수상했다. 벤투라는 89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2004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메츠.뉴욕 양키스.LA 다저스 등 대도시 네 팀에서 뛰며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골드글러브 3루수 부문을 여섯 번이나 수상했고 올스타에도 두 번이나 뽑혔다. 경기장에서는 늘 스타킹을 무릎까지 올려 신고 열심히 뛰었고, 누구보다 성실했기에 16년이나 빅리그에서 활약하며 스타로 군림했다.

벤투라의 경력이 이처럼 대단한데도 팬들이 그를 기억할 때 떠올리는 아름답지 않은 장면이 하나 있다.

93년 어느 날. 벤투라는 투수가 던진 몸쪽 공에 갈비뼈를 맞았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곧바로 투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너무 성급했던 나머지 벤투라는 중심을 잃고 오히려 '헤드록' 자세를 당해 흠씬 얻어맞았다. 그 과정에서 두 팀의 선수들이 몰려나와 몸싸움을 벌였고, 벤투라는 2경기 출전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이 장면이 메이저리그에서 유난히 화제가 된 것은 당시 벤투라가 달려들었던 투수가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던 놀런 라이언이었기 때문이다. 팬들은 평소 착하고 성실하게만 보였던 벤투라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데 놀랐고,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대투수 라이언에게 몸을 날리며 대들었다는 점에 더 놀랐다. 그 한 번의 행동으로 벤투라에게는 곱지 않은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2일 김동수(현대)는 한화와의 경기에서 몸맞는 공에 화가 나 마운드로 달려가 주먹을 휘둘렀다. 그 과정에서 두 팀 선수들이 뛰어나와 몸싸움 일보 직전까지 갔다. 김동수는 4일 "참았어야 했는데 순간적으로 자제력을 잃었다"고 후회했다. 김동수의 경력은 벤투라 못지않다. 그도 아마추어(한양대) 때부터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렸고 90년 프로야구 신인왕이며 일곱 번이나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7년째 현역으로 뛰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누구보다 성실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다. 그러나 이번 일로 김동수는 벌금 200만원의 징계를 받았고, 오명(汚名)을 안게 됐다.

선수들에게 경기장은 자신의 인생이 걸려 있는 신성한 무대다.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는 불문율,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매너와 에티켓, 동업자 의식이 있어야 그 무대가 존립할 수 있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몸을 향해 공을 던지고, 맞았다고 달려가 주먹을 휘두른다면 그 무대는 곧 무너지고, 프로야구는 스포츠로 인정받을 가치가 없어진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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