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금리 올라도 고정금리 대출 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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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A은행에서 최근 주택담보대출 1억원을 받은 의사 김모씨는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 연소득이 1억원 가량 되는데다 담보로 제공한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시가로 15억원을 넘고 있어 대출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금리였다. 향후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한 김씨는 당장 금리가 좀 높더라도 고정금리를 희망했다. 조건을 보니 변동금리로 하면 연 5.8%가 가능하지만 고정금리(5년)으로 할 경우 무려 7.79%에 달했다. 김씨는 "연 200만원 이자를 더 내고 고정금리를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리 상승기를 맞아 고정금리를 희망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고정금리 대출의 보급은 지지부진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말 신규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은 86.5%에 달한 반면, 확정금리부 대출은 13.5%에 머물렀다.

은행은 고정금리 상품을 내놔도 고객이 찾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2000년 이후 저금리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1%포인트 이상 높은 고정금리 상품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은행은 지난해 가을 연 5.8%대의 5년 고정금리 대출 상품을 내놓았지만 반응은 썰렁했다. 4일 현재 하나은행 전체 주택담보대출(21조 579억원)중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2442억원(1.16%)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장기 고정금리 상품인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도 올 들어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 심지어 자국에서는 고정금리 방식으로 대출을 많이 하는 외국계 은행들도 국내에선 변동금리 방식을 우선시한다. 예컨대 SC제일은행은 94.6%가 변동금리 대출이다. HSBC은행도 확정금리 대출이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은행이 고정금리 대출상품의 금리를 높게 정해둠으로써 금리 리스크를 고객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금리가 오르건 내리건 그냥 CD에 연동시켜 수수료만 챙기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은행의 상품 설계능력이 떨어지고 신용보다는 담보를 보고 대출해주는 관행 탓에 소비자 수요에 맞는 고정금리 대출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윤창희.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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