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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 고시원 참극' 재현된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

중앙일보

입력

17일 방화ㆍ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경남 진주시의 주공아파트 복도 모습. [뉴시스]

17일 방화ㆍ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경남 진주시의 주공아파트 복도 모습. [뉴시스]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11년 전 서울 논현동 고시원에서 벌어진 방화ㆍ흉기 살인사건의 참극을 떠올리게 한다. 건물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거주자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범행 수법,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방식까지 비슷하다.

무고한 이웃 주민에게 방화, 흉기로 분노 표출 #전문가 "범행 동기에 대한 철저한 조사 필요"

이날 진주시 가좌동의 한 주공아파트에 사는 안모(43)씨는 자신의 4층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칼을 휘둘렀다. 노약자, 여성 등 주민 5명이 안씨가 휘두른 흉기에 숨졌고 13명이 부상을 당했다. 안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횡설수설하는 등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2008년 10월 20일 경찰이 방화 살인사건 현장인 서울 논현동 고시원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8년 10월 20일 경찰이 방화 살인사건 현장인 서울 논현동 고시원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8년 10월 20일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사건도 이와 판박이였다. 범인 정모(당시 30세)씨는 자신의 고시원 3층 방에서 지프라이터용 휘발유를 침대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 비좁은 고시원에 연기가 퍼지자 사람들이 방에서 뛰쳐나왔고, 정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를 꺼내 3층 복도에서 6명을 찔렀다. 이후 4층으로 올라가 5명을 더 찌른 뒤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이 사건으로 6명이 숨졌고, 7명이 중ㆍ경상을 입었다.

피해자들은 인근 시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등 대부분 어려운 형편에 고시원 월세방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었다. 검거된 정씨는 경찰에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살기 싫다”고 진술했고, 2009년 서울중앙지법은 정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정씨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형이 확정됐다.

전문가들은 화재로 경황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데다가, 무고한 이웃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두 사건이 매우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통제력이 약하고 분노조절이 되지 않은 피의자가 무고한 사상자를 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주로 방화는 분노 표출의 일환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노 상태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보복을 하는 심리로 이른바 무차별 ‘다중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팀장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모욕을 준 특정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행이 아니라 ‘내가 살 수 없다면 이 사회도 필요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방식의 범죄라는 것이 논현동 고시원 방화ㆍ살인 사건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단순히 정신질환으로 저지른 우발적 범행으로 치부하기에는 흉기를 미리 준비하고 방화를 저지른 뒤 놀라 대피하는 시민을 찌르는 등 일종의 계획 범죄의 성격도 있기 때문에 범행 동기 등에 대해 경찰에서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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