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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록관’ 찬반 나뉜 진도 “세계명소” vs “트라우마“

중앙일보

입력

세월호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우리는 왜 팽목항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 모습. [사진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행사 추진위원회]

세월호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우리는 왜 팽목항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 모습. [사진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행사 추진위원회]

“세월호 참사의 상징인 전남 진도 팽목항에 기록관을 조성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다크 투어리즘’의 명소가 될 수 있다.”

세월호 5주기 하루 앞두고 팽목항서 토론회 #‘우리는 왜 팽목항을 지켜야 하는가’ 주제 #김화순 위원장 “다크 투어리즘 명소 가능” #진도군 “진도항 공사 지연 안될 말” 반대 #주민들 “생계 먼저” “수습 거점” 의견 갈려

김화순 팽목 기억공간 조성을 위한 국민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팽목항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전 세계에 알려진 역사적 명소다. 여기만큼 기록관이 세워질 장소로 적합한 곳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세월호 5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다. 토론 주제는 ‘우리는 왜 팽목항을 기억해야 하는가’이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나 재난이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말한다. 미국 9·11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가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은 “다크 투어리즘은 결코 부정적 단어가 아니다”며 “국내외 무수한 비극적 역사 현장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비극’과 ‘죽음’의 이미지가 아닌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성찰의 장(場)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정부와 언론의 잘못된 대응을 민낯 그대로 기록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진도 주민의 숭고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기려 진도의 자긍심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경미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은 “특정 사회가 불가항력적인 재난이나 참사를 겪었을 때 국가 구성원들이 그 재난과 참사를 잘 잊고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추모물이나 장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 국장은 “국가의 실수로 참사가 벌어졌거나 악화됐을 때 국가가 책임감을 가지고 이 사안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국가 구성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했다.

영국 출신 영화감독 닐 조지(Neil Georgy)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는 ‘나라 밖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월호 참사와 팽목항’이란 주제의 발표에서 “2016년 ‘애프터 더 세월(After the Sewol)’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하면서 부패한 사회 시스템 때문에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시간이 흐르면 비극적 사건은 잊히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 나타난 상징적 이미지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고통과 아픔 같은 감정은 사건과 관련된 내러티브(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이미지’이며, 이것이 없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데올로기와 문화도 없을 것”이라며 “이미지란 광화문·안산·진도·팽목항과 같이 사건과 관련된 장소”라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 나온 국내외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세월호 참사 현장 보존’을 외친 것과 달리 진도군은 군민의 경제적 피해 및 트라우마 지속, 관광업 쇠퇴 등을 들며 기록관 조성에 부정적이다. 기본적으로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국제항 개발 사업 공사가 늦춰져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팽목항 일대를 국제항으로 만드는 진도항 사업은 세월호 참사 때 중단됐다가 2016년 재개됐다. 2020년 완공 예정이다.

팽목항 인근에 들어설 국민해양안전관에 추모 시설이 조성된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꼽힌다. 국민해양안전관은 팽목항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10만㎡ 규모로 조성되는 안전체험 시설이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로 오는 6월 착공된다. 선박탈출 체험장을 갖춘 선박재난관과 생존수영법을 가르치는 해양생존관 외에 추모공원인 해양안전정원 등이 들어선다.

진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정모(61·여·진도읍)씨는 “이제는 세월호의 충격에서 벗어나 먹고사는 문제부터 챙겨야 한다”고 했다. 반면 문모(71·조도면)씨는 “팽목항이 희생자 수습의 거점이었던 만큼 기록관도 여기에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진도=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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