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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세먼지 ‘폐암 영향 연구’조차 한국엔 아직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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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은영 책임연구원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부

박은영 책임연구원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2013년 초미세먼지(PM2.5)를 포함한 대기오염이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것이 확실한(Carcinogenic to humans)’ 1군 발암 요인으로 분류했다.

미세먼지 연구할 국내 기반 취약 #정부는 범부처 협력체계 구축해야

초미세먼지에 의한 폐암 위험 증가는 유럽·북아메리카·아시아 지역에서 코호트 연구(Cohort study·특정 요인에 노출된 집단과 노출되지 않은 집단을 추적한 비교 연구)와 환자-대조군 연구(Case-control study)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이런 연구를 보면 대부분 초미세먼지의 연평균 농도가 10~30㎍/㎥ 범위에 있는 지역에서 수행됐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말하자면 노출 수준이 전 세계적으로 하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수행됐음에도 폐암 위험의 증가를 관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017년 대기환경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5년이 26㎍/㎥, 2017년은 25㎍/㎥였다.

필자는 국립암센터에서 근거 기반의 발암 요인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 기획 및 수행을 담당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근거 기반의 미세먼지 관련 정책을 수립하기에는 현재 미세먼지에 대한 국내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 이런 실태는 미세먼지 증가 원인 및 효과적인 저감 방법, 국민 노출 수준, 건강 위해성 등 미세먼지 관련 모든 분야에 걸쳐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리는 초미세먼지가 흡연율과 간접흡연 노출률이 여전히 높은 한국에서 폐암 발생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미세먼지 배출원은 매우 다양해서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저감을 위한 절충 및 타협 지점이 어디인지 밝히는 것도 매우 어렵다.

미세먼지 저감 정책의 필요성은 한국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안이다.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됐듯 지구촌에서 초미세먼지나 오존 등 대기오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의 수가 2015년 기준 연간 약 880만 명에 달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결과는 한국보다 대기오염이 훨씬 심각한 인도·중국의 결과가 포함된 것이라 한국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한국도 대기오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 수가 2015년 기준 1만2000명이나 된다. 민감 집단인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앞으로 더 많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강력한 미세먼지 관련 정책 수립 및 집행의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마침 지난 3월 중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미세먼지가 ‘사회 재난’ 범주에 포함됐다. 이로써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추가 예산 투입 및 특별교부금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종합적이고 촘촘하면서도 정교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세먼지 배출원 파악, 효과적인 정책 개입 방법, 영유아·어린이·성인·노인 등 아집단별 노출 수준 평가, 건강 위해성 평가까지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계획을 갖고 지속해서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실제로 작동하는 범부처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세먼지를 포함한 발암 요인 관련 이슈는 담당 부처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부처가 관련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부처 협력 체계가 잘 구축돼 현재 부처별 전문기관에 수집·보관하고 있는 정보들을 서로 연계해보자. 그럴 경우 제한적이기는 하겠지만, 미세먼지 배출원 파악 및 건강 위해성 평가를 시행할 수 있다.

미세먼지의 건강 위해에 대한 근거 마련과 대응 전략 수립 노력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국내 상황에 맞는 발암 요인 정책 근거 마련, 단계별 중재의 방향 설정과 효과 평가 등 기본에 충실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가능할 것이다.

박은영 책임연구원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