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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인내심 게임, 입지 좁아진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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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도널드 트럼프(左), 김정은(右).

도널드 트럼프(左), 김정은(右).

도널드 트럼프(왼쪽 얼굴)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3차 정상회담을 놓고 ‘인내심 게임’에 돌입했다. 정상회담 개최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각자 상대를 향해 양보하라는 통첩을 내걸고 있다.

3차 정상회담엔 긍정적이지만 #김정은 “미국, 새 계산법 가져오라” #트럼프 “핵 없는 날 고대” 빅딜 고수 #문 대통령 오늘 대북 메시지 낼 듯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오전 8시(현지시간, 한국시간 13일 오후 9시) 트윗에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점에서 3차 정상회담은 잘 될 것”이라고 올렸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핵무기와 제재가 제거될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하고, 그러고 나서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가 중 하나가 되는 것을 지켜보길 기대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앞서 12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조선중앙통신 13일 오전 6시 보도)에서 “조·미 수뇌회담을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며 “미국은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라”고 요구한 데 대한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에서 “북한 김정은과 우리의 개인적인 관계가 매우 좋다”고 강조했지만 “핵무기와 함께 제재가 제거될 수 있는 날”을 담은 건 핵무기와 제재를 일괄 해제하자는 ‘빅딜’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빅딜’을 받으라는 트럼프 대통령과 못 받겠다는 김 위원장이 평행선을 달렸던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진전이 없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핑퐁은 10일 김정은 위원장이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의 기치로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된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선언하며 시작됐다(조선중앙통신 11일 오전 6시 보도).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낮 12시(한국시간 12일 오전 1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제재는 유지하길 원한다”며 “3차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지만, 단계별로 진행해야지 서두르진 않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다양한 스몰 딜도 가능하지만, 지금은 빅딜을 논의하고 있고, 빅딜은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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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김 위원장은 13일 새벽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12일 연설문에서 “미국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시사하고 있지만, 적대시 정책 철회를 외면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우선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용단’을 요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와 제재가 함께 없어지는 날’로 답한 셈이다.

김정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 말고 민족옹호 당사자 돼라” 한국 압박

두 정상이 보여준 간극의 핵심은 대북제재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면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련 언급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미 행정부의 핵심 당국자는 이와 관련, “국무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 전반에서 대통령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라고 우리 당국에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를 중재하려는 문 대통령의 부담만 커졌다. 김 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요구한 게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4차 남북 정상회담 구상을 포함한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동시에 사흘간의 핑퐁 게임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입장을 알리고 직접 반응을 듣는 직거래 양상을 보여줬다. 김 위원장 본인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우리는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고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강조해 향후에도 필요할 경우 직거래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워싱턴과 평양이 서로 공이 상대방 코트에 넘어갔다며 상대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북·미 중 어느 쪽 인내심이 더 크고, 더 오래 버틸 수 있느냐의 게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맞진 않더라도 김 위원장이 핵미사일 시험만 하지 않는 한 성공이라고 주장할 것”이라며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느냐, 과거처럼 도발을 통해 양보를 요구하는 패턴으로 돌아가느냐는 선택의 상황에 몰렸다”고 말했다.

중재자 역할과 관련,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는 “한국은 항상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자’로 임해 왔다”며 “중재자 개념은 북·미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 쓴 표현일 뿐 우리의 당사자 역할을 한시도 잊어본 적 없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전수진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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