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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후 언제까지 낙태 허용? 헌재 가이드라인은 22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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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당장 낙태 시술이 허용되는 건 아니다. 낙태 허용 주수, 사유, 상담 의무화, 건강보험 적용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 아니다. 낙태죄의 예외를 인정하는 모자보건법을 손볼지, 별도 법률을 만들지도 관심거리다. 하나하나가 뜨거운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후속 조치는 #현행 모자보건법 24주까지 허용 #의학계 “24주면 태아 살릴 수 있어” #독일·프랑스 12주, 미국 일부 6주 #의사 거부권, 건보 적용도 논란

모자보건법은 ▶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 ▶혈족·인척 간 임신 ▶모체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여기에 해당하면 임신 6개월(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런 합법적 낙태는 2017년 3787건에 불과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추정한 전체 낙태 연 5만 건에 비하면 매우 적다. 손문금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별도의 인공임신중절법을 만들지, 모자보건법의 예외적 낙태 허용 규정을 어떻게 할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며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치권에서 법을 개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형법과 특별법 둘 다 두고 있다.

◆일본 지역별 낙태 가능병원 지정=논쟁이 20여 년 이어지면서 낙태 허용 범위를 넓히는 데는 이견이 그리 심하지 않다. 어디까지 넓힐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할 가능성이 크다. 모자보건법은 임신 24주까지 허용한다. 헌재는 11일 ‘임신 초기’를 임신 22주 내외로 봤다. 의료계에서는 임신 기간이 길수록 후유증과 사망 위험이 커진다고 본다. 게다가 의학이 발달하면서 임신 24주 태아도 살린다. 생명 윤리 논쟁이 따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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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현행 모자보건법 규정이 현실과 맞지 않다. 24주 된 신생아도 치료할 수 있다”며 “대체로 해외에서 낙태 수술 주기를 12~16주로 정했다. 이 기간에 낙태 수술을 해도 산모에게 큰 위험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산모 안전을 위해 8주로 제한하자는 의견도 있다. 낙태하면 산모의 10%에서 신체 후유증이 생긴다. 사망 등 중증 합병증은 2% 수준이다. 미국 연구에 따르면 임신 8주부터 2주마다 낙태하는 산모의 사망률이 2배씩 증가한다.

이한본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부위원장)는 “낙태는 행정적인 규제로 다스려야 할 문제다. 외국 사례를 보면 임신 초기 12주 정도는 낙태를 무조건 허용하고 13~24주는 사회경제적 사유 등을 고려해 허용하고, 24주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병원에 낙태를 허용할지, 개인적 신념에 따라 의사가 거부할 때 처벌할지도 관심거리다.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낙태 시술 기관을 국공립 병원이나 지자체에서 허가한 병의원으로 제한해야 상담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심사숙고 절차와 보고 체계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역별로 낙태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지정한다.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진료를 거부하면 처벌받을 수 있지만 낙태는 일반적 진료와 달라 의사의 시술 거부권을 인정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찬성하는 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찬성하는 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건보 미적용 땐 저소득층 위험”=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비급여로 풀어놓으면 지금처럼 무분별한 낙태가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최안나 전문의는 “지금도 합법적인 낙태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앞으로 낙태 허용 범위가 넓어지더라도 지금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한다”며 “비급여가 되면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고 임신 주수나 절차를 만들어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국가가 지원하지 않고 ‘나는 허용했으니 네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내버려 두면 저소득층·취약계층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낙태죄 키워드별 쟁점

낙태죄 키워드별 쟁점

낙태 전후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을 의무화하자는 주장도 적지 않다. 최안나 전문의는 ”의료인이 낙태 관련 객관적 정보를 자세히 제공하고 낙태하지 않는 경우 어떤 지원을 받는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이런 걸 듣고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거쳐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주변에서 낙태를 강요받게 돼 여성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주위에서 ‘이제 낙태가 허용됐으니 고민하지 말고 낙태해라’고 압박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독일은 12주 이전까지 낙태를 허용한다. 다만 임신갈등상담소에서 상담하고 확인서를 내야 한다. 프랑스는 임신 12주 안에 곤궁한 상황에 부닥친 임부가 의사에게 임신중절 수술을 요청할 수 있지만 1주일의 숙려기간이 필요하다. 이런 절차가 없는 나라도 있다.

미국은 상황이 좀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낙태를 제한하는 법안이 대거 채택되고 있다. 올 들어 조지아·텍사스 등 11개 주에서 의사가 태아의 심장 박동을 확인(임신 6주)한 이후 낙태를 하지 못하도록 태아심장박동법을 채택했거나 논의 중이다.

이에스더·이승호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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