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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펀딩 원금 손실 3건 중 1건꼴 투자금 다 날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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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회사원 A씨는 지난해 3월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와디즈)를 통해 외식업체(앙스모멍 3호점)에 200만원을 투자했다. 1년 만기에 수익률 7% 이상이 투자 조건이었다. 처음 몇달은 매출이 양호해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갑자기 “기쁜 소식이다. 회사가 합병된다”고 공지한 이후 소식이 뜸했다. 상환 만기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외식업체 대표는 “당장 돈을 못 갚는다”는 공지를 띄웠다. 총 3억3000만원을 빌려준 개인 투자자 273명은 원금을 모두 날릴 위기다. A씨는 “사업이 잘되는 것처럼 투자자를 속이고 뒤로는 자산을 팔아치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금융당국 금액·부도율 공개키로

크라우드펀딩에 돈을 맡긴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연 5~10%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수백 명에게 돈을 빌려놓고 만기가 되면 부도를 내는 일도 적지 않다.

1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만기가 지난 크라우드펀딩 채무증권 88건 중 27건(30.7%)에서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27건의 채권 총액은 49억6000만원인데, 이중 돌려받은 돈은 절반 이하인 17억7000만원(손실률 64.3%)에 그쳤다. 특히 10건은 투자자들이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2016년 1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을 도입한 뒤 채권 부도율 통계를 금융 당국이 집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는 투자자 모집에 열을 올렸지만 정작 채권이 만기에 상환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만큼 당국과 중개업체 모두 투자 위험성을 알리는 데 소홀했다.

크라우드펀딩의 투자자 보호 장치는 상당히 허술하다. 창업기업의 자금조달을 편리하게 한다는 이유로 누구나 쉽게 투자할 수 있게 문턱을 낮췄다. 금융위가 지난 1월 뒤늦게 ‘투자 적합성 테스트’를 도입했지만 질문 10개짜리 간단한 설문이 전부다. 투자받은 기업이 재무 정보를 공시할 의무도 없다. 지난해 5월에는 게임업체 아이피플스가 크라우드펀딩으로 투자받은 회사채 7억원을 부도내자 투자자들은 경찰에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회사 측이 투자 게시판에 “원금보장형 채권”이라고 안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기 혐의에 대해 경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처리했다. 현재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회사에 남은 자산이 없어 재판에서 이겨도 투자자에겐 거의 실익이 없다.

뒤늦게 문제를 인식한 금융 당국은 크라우드펀딩 채권의 상환 건수와 금액·부도율을 집계해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부도 채권의 세부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강영수 금융위 자산운용과장은 “투자자들이 크라우드펀딩 채권투자의 위험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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