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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만들기,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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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경제가 어렵다. 국내는 물론이고 대외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다. 세계 주요 경제기관들은 세계 경제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행·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2.7%보다 낮은 2.6%로 내다봤다. 아시아개발은행(ADB)·국회예산정책처는 2.5%,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2.4%로 전망치를 낮췄다.

내수와 수출 부진 극복하려면 #기업이 투자할 여건 조성해야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2월 세계 경제의 4대 먹구름으로 브렉시트(Brexit) 관련 불확실성, 무역 분쟁과 경쟁적 관세 인상, 글로벌 금융 긴축, 중국 경제 성장 둔화를 꼽았다. 그러나 모든 악재가 겹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을 예고하지는 않았다. 경기 부진 우려는 있지만 최악은 아니라고 봤다.

그런데도 수출 등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마주한 여건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최근 반도체와 석유류 등 주력 수출품의 부진이 전반적인 수출 둔화를 주도하고 있다. 또 올해 2월 기준 우리나라 제조업 가동률은 71.2%에 그쳤고,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 제조업 가동률은 4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이는 제조업 가동률이 상승세를 보이는 주요 선진국과 대비된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 대응하려면 상황이 일시적인지, 아니면 구조적 문제인지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10년 전 세계 경제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맞아 어려움을 겪었으나 점차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2015년을 기점으로 세계 교역이 둔화하며 세계 경제가 구조적으로 변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세계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한 무역 증가가 글로벌 가치사슬 확대에 기반을 두었다면, 미·중 무역분쟁과 브렉시트로 나타나는 보호무역주의와 반세계화 정서는 글로벌 가치사슬 확대에 제동을 걸고 세계 교역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운송과 통신기술 발전에 힘입어 생산 비용이 낮은 곳으로 공장을 이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 비용 감축과 기술 발전은 공급을 늘렸지만 수요의 기반이 되는 구매력은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와 공급 과잉 현상이 생겼다. 공장이 들어선 지역의 일자리와 소득은 늘어나지만, 공장이 떠난 곳에서는 실업과 소득 감소 현상이 나타난다. 세계적으로 볼 때 이는 전반적인 구매력 부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찾으려면 글로벌 통상 환경과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적 통상정책, 미·중 무역 분쟁과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 브렉시트와 유럽 경제에 대한 우려는 우리의 수출시장이 축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수출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점차 약화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통상정책은 수출 총액보다 국내 부가가치에 무게를 두는 등 외형보다는 내실 있게 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또 내수를 굳건히 하려면 경제의 생명줄인 일자리 창출과 구매력 증대가 필요하며, 이는 국내 투자가 늘어야 가능하다. 정부는 국내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들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신기술과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경제 시대에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역량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혁신적 사업 아이디어를 막는 규제와 기득권을 보호하는 정책을 정리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의 위기를 미래의 기회로 바꾸기 위해 밀려오는 파도를 헤쳐 나갈 승풍파랑(乘風破浪)의 정신과 슬기를 모아야 할 때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