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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많았던 '김진표 교육 실험' '노의 남자' 가 밀어붙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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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노무현 대통령은 3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에 권오규(54) 청와대 정책실장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후보자에 김병준(52)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각각 지명했다. 후임 청와대 정책실장에는 변양균(57) 기획예산처 장관을 임명했다. 또 기획예산처 장관에는 장병완(54) 기획예산처 차관을, 공석 중인 국세청장에는 전군표(52) 국세청 차장을 각각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날 지명된 공직 후보자들은 국회 상임위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이달 말께 정식 임명된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경제.교육부총리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이며 교육정책도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각의 포인트는 김병준 전 실장의 교육부총리 발탁이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조차 "부동산정책 실패의 책임자"라며 환영받지 못한 인사였다. 교총과 전교조 등 교육 관련 단체들도 부정적 반응 일색이다.

야당에서는 영화 '왕의 남자'를 빗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입각에 이은 '노의 남자' 2탄이라는 비유도 등장한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김 후보자 지명을 밀어붙인 것은 공세적 측면이 두드러진 인사 드라마"라는 얘기가 나온다.

◆ "대학은 산업"이라는 인식=노 대통령이 경제부총리였던 전임 김진표 교육부총리를 임명한 공감대는 "대학은 산업"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대학도 개방과 교류의 이종(異種) 교배가 있어야 창의력과 경쟁력이 제고된다" "산업현장에 즉시 필요한 인력 제공이 시급하다"는 게 공감의 주 내용이었다

김진표 부총리는 취임 뒤 대학의 구조조정 및 통폐합, 국립대 법인화 도입을 추진하며 대학 개혁의지를 과시했다. 그러나 '김진표의 교육실험'은 고교 분야에서 기우뚱거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경제부총리 시절 경쟁과 자율을 강조했던 김 전 부총리는 원래 고교 평준화, 공교육 우선이라는 이 정부의 본질적 코드와는 잘 맞지 않는 듯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해 12월까지도 수월성 교육을 상징하는 자립형 사립고(자사고)의 20개 확대를 공언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를 강조하던 올해 초 그는 "평준화 문제의 답이 자사고는 아니다"며 이를 뒤집었다. 2005년 초 취임 당시 그는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 3월에는 내신 반영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라고 대학에 압력을 가하며 '공교육 우선'인 노 대통령의 코드에 동조했다.

이는 자연히 교육정책 전반의 혼란으로 비쳤다. 김 전 부총리의 딸이 서울 D외고를 나와 어문계열이 아닌 경영학과에 진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 정부 교육정책을 계속 추진할 '정당성'의 측면에서도 타격을 입게 됐다.

올 3월 이집트 순방 중 노 대통령은 "대학도 1~2년간 빠른 변화를 보여 오긴 했지만 걱정인 것이 사회 변화에 가장 강력히 저항하는 게 학교 선생님"이라며 개혁의 속도에 불만을 드러냈었다.

◆ 교육 친정체제 확립=이런 측면에서 김병준 전 실장의 발탁은 노 대통령의 평준화, 대학 개혁 등의 교육철학에 100% 주파수를 맞춰 온 '복심(腹心)'을 현장에 투입한 모양새로 비친다. 김 후보자의 코드 일치 순도는 물러난 김진표 전 부총리보다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김 후보자는 지명된 뒤 일성으로 "교육정책이야말로 경제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산업'론과 일치한다.

그는 "평준화라는 교육의 기본골격을 흔들 수는 없다" "대학의 본고사 부활이라는 성격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해 왔다. 사석에선 전임자의 대학개혁 정책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재정 투입에 의존하는 관료주의적 방식"이라고 비평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중용은 노 대통령이 교육의 친정(親政) 체제를 확실하게 구축하기 위한 강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노 대통령은 올 3월 골프 파문을 일으킨 이해찬 총리를 교체할 때 후임으로 김 후보자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5.31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한명숙 총리' 카드를 강력히 요청함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한 마음의 부담도 이번 인선 강행에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 후보자는 인수위 시절부터 무려 13개 자리의 하마평에 올랐었다. 청와대 내에선 "지방선거 참패 뒤 자칫 김병준 교육부총리 카드 무산까지 겹치면 권력 누수가 본격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부동산정책은 이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상황"이라며 "김 후보자가 부동산정책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불투명하다"고 그를 방어했다.

◆ '김병준 카드' 묵인한 김근태=지방선거 패배 뒤 '계급장을 떼고' 노 대통령과 담판할 것 같던 여당의 김근태 의장도 이번에는 원만한 당.청 관계를 위해 '김병준 카드'를 묵인했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언제든 당.청 관계의 불씨가 재연될 수 있는 게 거대한 표가 걸린 교육분야다.

김 후보자는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주도하며 "헌법처럼 바꾸기 힘든 정책" "세금폭탄 아직 멀었다"는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었다.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 있던 청와대 정책실장과는 달리 이해관계가 첨예한 교육현장에서도 과연 그 같은 저돌적 방식이 통할지는 의문이다.

최훈.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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