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중에 가장 큰 길 가는 행로…다툼 그악해지면 옴짝달싹 못 하는 애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30호 28면

[한자 진면목] 행로(行路)

발을 들여놓은 길, 또는 그런 길에 올라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행로(行路)다. 시인 이백(李白)은 그런 길에 발을 들여 나아가는 일을 인생에 견줬고, 그 행위가 결코 쉽지 않음을 ‘행로난(行路難)’이라는 시에서 간곡하게 읊었다.

路는 집으로 돌아오는 발 형상화 #네 갈래 길을 뜻하는 行과 짝 이뤄 #이백은 인생에 견줘 ‘행로난’ 읊어

흔히 길을 가리키는 한자 단어는 도로(道路)다. 앞의 道(도)는 조금 추상적이다.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는 首(수)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제법 있다. ‘머리로 헤아리는 길’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에 비해 路(로)는 좀 구체적이다. 금문(金文)에서는 ‘발’을 지칭하는 足(족)과 다른 요소 各(각)으로 구성했다. 足(족)은 정강이부터 발까지의 아래쪽 다리를 전체적으로 그린 글자였으나 이후 의미 축소를 겪어 ‘발’의 새김으로 자리 잡았다. 各(각)은 집의 입구(口)로 들어오는 발(夂·치)의 모습을 그려, ‘집으로 오다’는 의미를 형상화했다고 본다.

길은 크고 넓어야 좋다. 길 가는 행위가 좀 더 자유롭기 때문이다. 글자 요소, 또는 부수에 네 갈래 길을 지칭하는 行(행)이 들어 있는 경우가 대개 크고 넓은 길이다.

街(가)는 매우 큰 길을 가리킨다. 行(행)과 圭(규)의 합체다. 圭(규)는 ‘평지’의 뜻이라고 한다. 평지에 네 갈래 길(行)이 맞물려 있는 꼴이다.

“충격적이네”라고 할 때의 衝(충)도 그렇다. 본래는 옛 싸움터에서 성벽을 허무는 데 동원한 큰 전차를 가리켰다. 그런 거대한 전차로 때리는 일이 충격(衝擊), 그 전차가 다닐 만큼 중요하고 큰 길이 요충(要衝)이다.

길을 닦고 유지하는 일은 국가와 사회의 한 토대다. 그래서 옛 동양의 길 이름은 다양했다. 路(로), 道(도), 塗(도), 畛(진), 徑(경)의 순서다. 徑(경)은 사람이 겨우 다닐 만큼 좁은 길이다. 畛(진)은 말이나 소가 다닐 수 있는 길이다. 그보다 큰 길이 塗(도), 다시 더 넓은 길이 道(도), 가장 큰 길이 路(로)였다고 한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피해야 하는 길이 있다. 기로(岐路)는 갈림길이다. 갈래가 너무 복잡하면 큰 방향을 놓치기에 십상이다. 다른 하나의 길 애로(隘路)는 더 위험하다. 좁고 또 좁아져 종국에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길이다.

다툼이 매번 그악하게 번지면서 우리 사회의 역량이 전체적으로 기우는 이 상황이 혹여 애로 아닐까 싶다.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치자(治者)들이 진지하게 살펴야 할 일이다.

하영삼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장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