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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의 두 거장' 청전과 소정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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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이상범의 '고원무림'(1968,종이에 수묵담채, 76.5x192.5cm). [사진 갤러리현대]

청전 이상범의 '고원무림'(1968,종이에 수묵담채, 76.5x192.5cm). [사진 갤러리현대]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1972)과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1899~1976)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는 전시가 10일부터 열린다. 서울 삼청로 현대화랑과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한국화의 두 거장-청전과 소정'전이다. 갤러리현대가 개관 5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로, 두 거장의 대표작 각 40여 점 총 8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갤러리현대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리움 등 외부 기관에서 작품들을 다수 빌려왔다.

갤러리현대 50주년 기념 전시 #두 거장의 대표작 각 40여 점

청전 산수, 가식 없는 한국 자연 

먼저 현대화랑에서 만나는 것은 청전의 대표작이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청전은 조선 말기의 최고의 화가인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과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晋, 1853~1920)에게 그림을 배웠다.

청전 이상범의 '효천귀로'. 1945년 8월 15일에 완성한 작품이다. [사진 갤러리현대]

청전 이상범의 '효천귀로'. 1945년 8월 15일에 완성한 작품이다. [사진 갤러리현대]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봐야 할 작품들은 특히 현대화랑 2층 공간에 몰려 있다. 1940년대 작품들로 평소 보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그중 하나는 '효천귀로(曉天歸路)'(1945, 129X256㎝). 1945년 8월 15일에 완성한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에게 처음 공개된다.  '효천'(曉天)은 '새벽녘' 이란 뜻이다.

'설악산'(1946)은 청전 화풍의 전환점 시기의 작품이란 점에서 의미 있다. 송희경 이화여대 조형예술학과 초빙교수는 "해방 이전에 즐겨 사용하던 뾰족한 침엽수 대신 이후에는 '청전 양식'이라 불리는 미점법을 활용해 맑고 연한 담묵으로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둔덕을 재현했다"며 "1960년대 이후에는 수묵의 미묘한 색조만으로 승부하는 산수화를 창출했다"고 말했다.

청전 이상범의 '설천보희'(1960년대).[사진 갤러리현대]

청전 이상범의 '설천보희'(1960년대).[사진 갤러리현대]

청전은 특별한 지명 없이 한국인이라면 친근하게 보았음직한 보편적인 산수를 그린 작품이 많지만, 풍경을 직접 보고 그린 '실경 산수화도 꽤 많다. '금강산' 그림이 그 대표다. 송 교수는 "청전이 금강산 그린 것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겸재가 만이천봉을 한 화폭에 담은 전도 형식을 선호했다면, 청전은 금강산의 명소를 분리된 화폭에 재현했다"고 말했다. "금강산의 절경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사계의 계절감을 살린 것이 이들 그림의 특징이다.

청전이 1952년 대구에 피난 가 있을 때 그린 '추강묘연'(49x92㎝)도 늦가을의 고즈넉하고 스산한 정취를 담은 것으로 눈에 띈다. 짙고 섬세한 먹색으로 저녁 안개가 뽀얗게 깔린 대기의 공간감을 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1950년대 중반 청전은 '절대준'(붓을 옆으로 뉘어 그은 뒤 끝에 가서 직각으로 짧게 그어 마무리하는 기법)과 '부벽준'(산이나 바위를 그릴 때 도끼로 팬 나무의 표면처럼 나타내는 기법)을 혼합해 바위와 언덕의 질감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했다. 이 시기에 그린 그림 중 기와집과 성곽 등에 자주 드러나는 기법이다.

1954년 그린 '효천보희'(1954, 94x184㎝, 호암미술관 소장)는 50년대 중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청천의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최순우(1916~1984)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일찍이 청전에 대해 "청전은 평범하고도 스산스러우며 또 서민적인 한국의 자연을(…)굵은 사매발처럼 가식 없이 굴탁없이 노래하고 있다"며 "그는 독자적인 한국산수 정립의 고된 길을 걸어왔다"고 적었다.

소정, 거친 바위결과 진한 흙내음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난 소정은 조선 말기 화가 소림 조석진의 외손주다. 일찍이 동양화를 공부했고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 1937년부터 전국을 유람하며 실경산수를 그리기 시작한 그는 적묵법(먹의 농담을 살려 순차적으로 쌓아가듯이 그리는 기법)과 파선법(선 위에다 진한 먹을 튀기듯 점을 찍는 기법)을 사용하며 개성적인 필묵으로 자신만의 수묵 세계를 구축했다.

소정 변관식의 '농촌의 만추'(1957,종이에 수묵담채, 115.3x264cm).[사진 갤러리현대]

소정 변관식의 '농촌의 만추'(1957,종이에 수묵담채, 115.3x264cm).[사진 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에서 만나는 작품 중 '농촌의 만추'(195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는 소정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진한 먹빛과 짧은 선을 문지르듯이 겹쳐 그으면서 윤곽과 음영을 살려내 늦가을 시골의 흙내음을 진하게 표현했다.

나무와 집, 논두렁과 마른 풀을 진한 먹으로 그리면서, 하늘을 과감하게 빼어버린 구도가 매우 독특하다.

소정 변관식의 '외금강 삼선암 추색'(1959, 155x117cm). [사진 갤러리현대]

소정 변관식의 '외금강 삼선암 추색'(1959, 155x117cm). [사진 갤러리현대]

소정 변관식의 '단발령'(1974). 1974년 현대화랑 개인전 때 출품된 작품으로, 이 시대 소정의 금강산 그림을 대표하는 작품이다.,[사진 갤러리현대]

소정 변관식의 '단발령'(1974). 1974년 현대화랑 개인전 때 출품된 작품으로, 이 시대 소정의 금강산 그림을 대표하는 작품이다.,[사진 갤러리현대]

금강산의 삼선암 봉우리를 대담하게 수직으로 치켜세운 '외금강 삼선암 추색'(1959), 적묵과 파선법으로 바위의 강한 질감을 표현한 '내금강 보덕굴'(1960)'내금강 진주담'(1960)은 소정의 명작으로 꼽힌다.

1974년 현대화랑 개인전 때 출품해 당시 전시회의 '백미'로 꼽혔던 '단발령'도 눈에 띈다. 소정의 금강산 그림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단발령 고개에서 멀리 보이는 금강산의 봉우리를 무수히 반복적으로 찍어 표현했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소정의 묵점은 후기로 갈수록 더욱 대담해졌다"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전통 위에 특유의 힘찬 붓질로 화폭 위에 기운생동의 경지를 열었다"고 말했다.

갤러리 개관 50주년을 맞아 이 전시를 기획한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청전과 소정은 겸재와 단원 등 조선 대가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독창적인 화풍을 이룩한 거장들"이라며 "현대미술 흐름 속에 자꾸 전통회화가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늦었지만 한국화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이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 관람료 5000원(학생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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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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