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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복판에 들어서는 DMZ 초소의 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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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초청 작가인 이불의 패브릭 페인팅 ‘Untitled (Willing To Be Vulnerable - Velvet #6)’. [사진 PKM갤러리]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초청 작가인 이불의 패브릭 페인팅 ‘Untitled (Willing To Be Vulnerable - Velvet #6)’. [사진 PKM갤러리]

‘흥미로운 시대에 살아 가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이불·강서경 작가 비엔날레 초청 #본전시·한국관 모두 여성작가로 #최승희·여성국극·바리설화 다뤄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서는 몸짓들

오는 5월 11일 개막하는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의 올해 주제다. 올해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디렉터 랄프 루고프(Ralph Rugoff)는 최근 자신이 제시한 이 주제 아래 역량을 펼칠 본전시 초청 작가(Invited Artists) 명단을 공개했다. 전세계에서 그가 초청한 작가는 총 79명. 이 안에 이불(55)과 아니카 이(48), 강서경(42) 한국 작가 세 명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흥미롭게도 모두 여성 작가다.

루고프는 “올해 주제는 1930년대 영국 정치가 오스틴 체임벌린 경의 연설에서 따왔다”며 “‘흥미로운 시대에 살아라’, 이것은 고대부터 전해온 저주의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루고프는 “저주가 우리에게 떨어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은 위기의 연속이며 ‘가짜뉴스’의 시대”라고 진단하며 “이번 본전시는 이 ‘흥미로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고 살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작품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강서경의 ‘GRANDMOTHER TOWER-tow #19-1’. [사진 국제갤러리]

강서경의 ‘GRANDMOTHER TOWER-tow #19-1’. [사진 국제갤러리]

이에 앞서 지난 5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이번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계획 공개회가 열렸다. 본전시가 아닌 국가관 전시는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90개국이 대표작가를 소개하는 자리다. 올해 한국관 전시는 지난해 6월에 선정된 큐레이터이자 비평가 김현진(KAIDST 아시아 지역 수석 큐레이터)씨가 예술감독을 맡아 총괄하고, 정은영·남화연·제인 진 카이젠 등 세 작가가 참여한다. 감독부터 참여작가까지 네 명이 모두 여성이다.

이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한국 미술계의 ‘우먼 파워’가 이끈다. 설치 작품부터 영상 작업까지 각기 장르는 다르지만, 그동안 꾸준히 자기 시각으로 세상을 읽고 목소리를 내온 여성 작가들이 세계 큰 무대에 나란히 작품을 펼쳐놓게 됐다. 갈수록 여성 작가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풍경이다.

이불 작가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 비무장지대 에서 나온 고철을 녹여 만든 4m 높이의 구조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사진 PKM갤러리]

이불 작가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 비무장지대 에서 나온 고철을 녹여 만든 4m 높이의 구조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사진 PKM갤러리]

◆ 현대 미술의 최전선=베니스 비엔날레 참여는 작가들에게 어마어마한 노출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기회다. 장장 200일에 걸쳐 열리는 동안 베니스를 찾는 세계 미술 전문가들과 관광객들에게 작품을 보여준다. 이불 작가의 행보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20년 전인 1999년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하는 동시에 본전시에 초청받은 데 이어 올해 다시 본전시에 초청받았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와 베를린의 그로피우스 바우(Gropius Bau)에서 대규모 회고 순회전을 연 데 이은 의미 있는 성과다.

이불 작가는 이번 전시에 총 3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 특히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감시 초소(GP) 철수 과정에서 나온 해체 잔해물로 제작 중인 높이 4m의 대형 조형물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동양화를 전공한 강서경 작가는 한국 전통회화와 음악에서 얻은 영감을 설치와 조각·영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사진 정희승]

동양화를 전공한 강서경 작가는 한국 전통회화와 음악에서 얻은 영감을 설치와 조각·영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사진 정희승]

강서경 작가 역시 지난해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리버풀 비엔날레와 상하이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해외 활동이 활발했다. 이번에 그는 두 개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 아르세날레 전시장엔 회화·설치·퍼포먼스·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땅 모래 지류(Land Sand Strand)’ 연작을, 또 다른 공간에는 강 작가의 오래된 연작 중 하나인 ‘그랜드마더 타워’를 설치한다. 작가가 할머니의 초상을 조각으로 구현하며 시작된 프로젝트다.

한국관 전시에 참여하는 제인 진 카이젠, 정은영, 김현진(예술감독), 남화연 작가.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관 전시에 참여하는 제인 진 카이젠, 정은영, 김현진(예술감독), 남화연 작가.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최승희·여성국극·바리 설화=김현진 예술감독이 이끄는 한국관 전시는 여성 작가들의 비판적 젠더의식을 내세웠다. 기존의 역사를 새로운 시점으로 읽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세 작가 모두 리서치(자료 조사와 연구)에 기반한 영상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남화연 작가는 20세기 전설적인 안무가 최승희를 소재로 삼았고, 정은영 작가는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여성국극’을 소재로 작업했다. 남성중심적인 연극계에서 여성국극이 던지는 의미를 살펴보겠다는 의도다. 제인 진 카이젠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한국계 덴마크인으로 버려진 딸의 이야기인 바리 설화를 새롭게 해석한 영상물을 선보인다.

김현진 예술감독은 “최근 시각예술 분에서 근대화의 역사를 다시 읽고 쓰는 작업이 활발하다”며 “오늘날 이를 혁신적으로 이끄는 힘은 바로 젠더 다양성이다. 세 작가가 이런 변화에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이야기를 보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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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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