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 정국 파동」느긋한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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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의 충격으로 정치권에 한파가 몰아닥친 가운데 여야는 이번 사건이 어떻게 번져나갈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민정·민주·공화 등 3당은 이번 사건이 간첩사건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우려와 비판을 표시하면서도 당사자인 평민당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특히 3당은 현재 확대 강화되고 있는 공안 정국이 정치권 전체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능동적인 대응책을 모색 중이다.
○…서 의원 사건으로 공안정국의 주도권을 쥐게된 민정당은 모처럼의 「호기」를 십분 활용한다는 속셈.
민정당은 두텁게 형성되고있는 공안 기류를 타고 차제에 좌익·좌경세력의 실체를 밝혀보겠다는 단기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이번 사건으로 충격받은 보수세력을 결속시켜 노태우 대통령 통치 추진력으로 활용해 보겠다는 구상인 것 같다.
이와 함께 대북 정책을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등 6공 통치 구도의 수정 작업도 병행하고있다.
민정당은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적 대응에는 강경과 온건론이 내부적으로 엇갈리고 있으나 사법적 대응에는 단호해야 한다고 일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정당은 군 수뇌부 등 강경 보수 세력의 반응에도 신경 쓰고 있는 눈치다. 민정당이 이번 사건이 벌어지면서 대야 접촉 등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여권내의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당은 당정회의를 통해 이번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안기부 수사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고 좀 더 효율적이고 철저한 수사를 위해 합동 수사반을 편성토록 건의해 반영된 것도 특기할만하다.
정치적 대응에 관한 한 민정당의 전략은 유동적인 것 같다.
사건발생초기에 서 의원 밀입북은 「제2의 국회 프락치사건」으로 몰아붙여 강공을 과시했던 민정당은 그후 대 평민당 공세를 자제해왔는데 최근 들어 수위를 바싹 치켜올리고 있다.
민정당의 대 평민당 공세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평민당에 대한 자발적인 숙당 요구. 이종찬 총장은 3일에 이어 5일에도 『민정당은 서 의원 사건을 정치문제로 비화시키기를 원치 않는다』면서도 『평민당은 이제 두 종류의 날개 짓을 그만두고 색깔을 분명히 해야하며 의회 민주주의 제도권에 적응하지 못하는 과격 세력을 자체적으로 정비하는 숙당 작업을 단행해야한다』는 의미 심장한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총장은 특히 『이러한 우리의 뜻이 직·간접으로 평민당측에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밝혀 모종의 막후 대화가 진행중임을 암시했다.
당내에서는 이러한 강공책이『평민당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예상외의 예민한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당 지도부는 평민당에 대한「압력」쪽을 택함으로써 문동환 전부총재와 기타 의원들에 대한 강경 수사 방침을 완곡하게 전달하려는 것 같다.
작금의 공안정국에 대처하는 민정당의 분위기를 보면 최소한 이번 기회에▲평민당의 기세를 꺾고▲평민당내에 강경 재야 세력과 기존 당료파와의 결별을 도모하며▲나아가 노 대통령의 집권 2단계에 평민당의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입지는 확보해 두겠다는 속셈인 듯하다.
○…민주당은 서 의원 사건에 대해 원칙적인 선에서만 입장표명을 하면서 매일 아침 회의내용 일부를 흘려 속마음을 드러내는 등 우회적으로 대응.
이런 속에서도 정부로의 창구 단일화 등 대북 접촉 3원칙을 내놓거나 「성역없는 수사」 「엄정 처리」등을 촉구해 간접적으로 평민당의 자세를 비판하고 있다.
특히 성역 없는 수사촉구를 놓고는 민주당이 은근히 수사가 평민당 지도부까지 확대되기를 희망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양당 사이가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다.
물론 공안당국의 정보 부재를 비판하고 이를 빌미로 정부·여당이 5공 청산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은 하고 있으나 역시 무게의 중심은 서 의원 사건의 진상 규명에 실려 있다.
민공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 내부의 이념적 포석이 분명히 정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통해 민주당의 이념적 노선이 온건 보수임을 재확인시키면서 평민당측에 분명한 색깔선택을 간접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정부·여당이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하고있다.
이번 사건을 빌미로 5공 청산을 흐린다거나 국가 보안법과 안기부법 등 악법 개폐를 포기하려는 조짐들에 대해 비판하며 이번 사건을 놓고 여권과 평민당 간의 정치적 흥정 가능성에대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있다.
○…공화당은 확실한 보수 정당답게 서 의원 사건에 대해 명백하게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서 의원의 국회의원직 제명을 요구한데서도 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서 의원 사건이 전대협 임수경양 사건과 맞물리면서『공권력 누수현상의 심각함』을지적, 정부로 하여금 좌경 및 용공 세력 전반에 대해 강경 조치를 요구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건은 일단 사건으로 처리하고 나서 그후에 개편 내지 색깔을 논하겠다는 자세다.
이와 함께 공화당은 사회전반에 걸쳐 대두되고 있는 「보수의 기류」를 최대한 활용할 수있는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3야 공조체제의 유지가 더욱 힘들어 졌다는 판단아래 김종필 총재가 강조하고 있는 정계의 개편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분석하고 있다. <김용일·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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