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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산 1300조원 탈출 러시…기업 브렉시트는 이미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2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시기의 추가 연기를 유럽연합(EU)에 요청하기로 했다. [AP=연합뉴스]

지난 2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시기의 추가 연기를 유럽연합(EU)에 요청하기로 했다. [AP=연합뉴스]

경영 환경 변화에 예민한 글로벌 기업들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아무런 합의를 맺지 못한 채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기업과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영국 탈출 러시가 본격화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 불안…기업 영국 탈출 러시 #英 연구소 “법인·자산 이전 금융사 269곳” #닛산·혼다도 공장 폐쇄 등 구조조정 #영국 로펌은 ‘브렉시트 특수’ 누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016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가 결정된 뒤 영국에 적을 둔 글로벌 기업들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여러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며 “한때 ‘유럽 상업 중심지’로 불렸던 영국의 위상이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탈출 러시의 선두 대열엔 금융사들이 있다. NYT는 영국 싱크탱크인 뉴파이낸셜 보고서를 인용해 “유럽 사업 법인을 영국 밖으로 옮기거나 자산을 이전하려는 금융사가 269곳에 달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이 가운데 210곳 이상의 기업은 “영국 이외 EU 지역에 유럽 법인을 새로 세우겠다”며 법인 설립 신청서까지 각 국가에 제출했다고 한다.

뉴파이내셜의 조사 대상인 금융·보험사 269곳 가운데 100곳은 영국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법인, 혹은 자산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뉴파이낸셜 보고서 캡처]

뉴파이내셜의 조사 대상인 금융·보험사 269곳 가운데 100곳은 영국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법인, 혹은 자산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뉴파이낸셜 보고서 캡처]

뉴파이낸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선택지는 더블린(아일랜드·100곳), 룩셈부르크(60곳), 파리(프랑스·41곳), 프랑크푸르트(독일·40곳) 순으로 많았다. 영국의 ‘EU 단일 시장’ 이탈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들의 사업 지역이 다변화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JP모건과 모건스탠리의 경우 더블린(자산운용업)과 프랑크푸르트(투자업) 등으로 사업을 분할시켰다.

영국에선 천문학적 규모의 금융 자산이 빠져나가고 있다. NYT는 보고서를 인용해 “영국 밖으로 이전되는 은행 자산은 8000억 파운드(약 1192조원), 보험사 및 자산운용사 자산은 1000억 파운드(약 149조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제조업체 역시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NYT에 따르면 지난 2월 일본계 자동차업체인 닛산은 영국 북동부 선더랜드 공장에서 신형 모델 차량 생산 계획을 철회했다. 같은 달엔 혼다가 영국 남서부 스윈던 공장 폐쇄 계획을 밝혔다. NYT는 “혼다의 결정으로 3500개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2016년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국민투표 이후 크게 떨어진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 [블룸버그 캡처]

2016년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국민투표 이후 크게 떨어진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 [블룸버그 캡처]

금융·제조업체의 탈출 러시를 부추기는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은 영국 로펌에 호재로 작용했다. 기업들의 다양한 고가 법률 자문 요청이 쇄도하는 것이다. 직원 고용, 사업 구조조정부터 차량 배기가스 규제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로펌들 매출액도 크게 늘었다. NYT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상위 100위권 로펌들의 합산 매출액은 240억 파운드(약 36조원)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연도인 2007년과 비교해 80억 파운드(약 12조원)가량 증가했다.

고객 숫자도 늘었다. 영국 런던 소재 로펌인 필드피셔의 앤드루 후드 파트너 변호사는 “노딜 브렉시트 우려를 제기하는 고객들이 지난 6주간 2~3배 늘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NYT는 “대형 고객사의 경우 브렉시트 자문 비용으로 최대 1000만 달러(약 113억원)까지 지불한다”고 언급했다.

로펌들은 파운드화 가치 하락 덕도 톡톡히 본다. NYT에 따르면 브렉시트 국민 투표가 있었던 2016년 이후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10% 이상 떨어졌다. 영국 로펌에 자문비 등을 지급해야 할 글로벌 기업 입장에선 비용이 내려간 것이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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