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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후유증 겪는 통영 어촌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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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9일 오전 경남 통영시 산양읍 연화리 중화마을. 태풍 '매미'가 지나간 지 17일이 지났지만 마을 앞 해변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바다 한가운데 있던 가두리 양식장 설치물인 뗏목 등이 부서진 채 해변으로 밀려 와 있다. 뗏목 위에 설치돼 있던 컨테이너 박스도 해안으로 밀려와 나뒹굴었다. 해안 콘크리트 옹벽은 지진을 만난 듯 쩍쩍 갈라져 있어 해일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일터를 잃은 어민 10여명이 넋을 잃고 바닷가에 앉아 있었지만 누구도 복구작업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0.5㏊ 양식장에서 기르던 돔.능성어 등을 모두 잃어버린 이병렬(67)씨는 "출하 직전의 3년짜리 고기들이 모두 사라져 5억원쯤 날렸다"며 "2억여원의 부채를 갖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부모를 도와 0.2㏊짜리 양식장에서 우럭을 기르던 김무상(27)씨는 "1억원어치의 고기가 사라졌고 1억원의 부채까지 안게 됐다"며 "고기와 함께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려던 꿈이 사라졌다"고 허탈해 했다.

30여가구가 공동 운영해 오던 1백여개의 양식장이 거의 사라진 연명마을은 쓰레기 하치장처럼 바뀌었다. 이춘득(38) 어촌계장은 "어민 누구도 다시 일을 시작할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도가 태풍 매미의 수산 피해를 집계한 결과 1천9백7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태풍 '루사' 피해액(3백69억원)의 다섯배가 되며 역대 적조 피해 중 최고인 1995년 3백8억원의 여섯배쯤 된다.

양식장을 복구하려 해도 인건비와 자재값이 폭등해 어민들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가로.세로 각 7m짜리 가두리 양식장 한대의 설치비가 5백50만원에서 6백50만원으로 올랐다.

양식장 설치업체인 현대가두리 김창균(50) 대표는 "주문은 몰려 들지만 일손이 달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구작업이 본격화하면 시설비는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우럭.넙치 등 치어 배양장 가운데 피해를 본 곳이 많아 양식장이 복구돼도 치어를 구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해안에 자리잡은 배양장 1백72곳 중 절반쯤이 파손됐기 때문이다. 치어 구입 시기인 내년 봄이 되면 심각한 치어 구입난이 예상된다.

이번 태풍으로 인한 복구비도 어민들로선 큰 부담이다.

해수어류양식수협 조사 결과 조합원의 평균 부채 규모(양식장 1㏊ 기준)는 약 4억원. 계속되는 양식어류 가격 폭락으로 2002년 통영지역에서 가두리 양식업자 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해수어류양식수협 조합원 3백25명 중 20%인 60여명이 도산한 상태다.

해수어류양식수협 양재관(梁在官)조합장은 "피해복구를 원하지 않는 양식장의 경우 어업 면허를 회수하는 조건으로 보조금 및 전업 자금 등을 지원해 구조조정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통영=김상진 기자<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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