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위주 교육 큰 문제" vs "글로벌시대 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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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달 19일 '공영형 혁신학교' 시범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세간의 관심은 '새 학교'가 아니라 '옛 학교'에 쏠렸다.

'2008학년도부터 (외국어고의) 학생모집 지역을 광역자치단체(시.도)로 한정함으로써 명실공히 지역수요에 부응하는 지역사회 학교로 육성되도록 할 계획임.'

A4용지 8쪽짜리 보도자료의 마지막 쪽에 해당 학생 및 학부모에게는 '폭탄 선언'과 같은 세 줄이 포함돼 있었다. 이 것으로 발표 핵심이였던 공영형 혁신학교는 뒷전으로 밀리고 외고의 모집지역 제한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당장 서울.경기도의 15개 외고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중학생과 학부모들도 거세게 항의했다. "어떻게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이 준비할 틈도 없이 시행하느냐"는 것이었다. 큰 돈을 들여 외지학생용 기숙사를 지은 학교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학교설립 인가권과 학생모집 허가권은 민선 광역자치단체 교육감이 갖고 있는 권한이다. 공 교육감은 교육부의 사전협의가 없었다고 밝히면서 서울은 현행대로 학생을 모집하겠다고 강조했다. 교육부의 응시제한 정책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하룻 만에 강경 입장에서 후퇴했다. " '현행대로'는 서울 학생은 학군을 나누지 않고 서울의 모든 외고에 응시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고 얼버무렸다.

며칠후 전국 29개 외고교장들협의회가 지역제한 시행 유예를 요청했다. 협의회는 지난달 26일 "중학교 입학 때 이미 진학할 고등학교를 결정한 학생들에게 교육적 신뢰를 주기 위해서라도 시행시기를 2년 이상 미뤄달라"고 교육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즉각 대학 입시는 3년 전 예고하지만 고교 입시는 10개월 전 예고하는 게 상례라며 시행 시기를 연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 후 또 어찌된 영문인지 외고 교장들의 반발 목소리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외고교장협의회 건의서에는 응시지역 제한을 기정사실화한듯한 '선뜻 이해하기 힘든' 요구 사항이 들어 있다. '광역자치단체로 제한해 신입생을 선발할 경우 자치단체의 학교운영비 등 재정지원을 대폭 늘려 외국어고의 건실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해 달라'는 것이 그것이다.

◇ '외고 규제' 급조 인상 짙다
= 교육부는 발표 당일에야 서울시.경기도 교육감에게 모집지역 제한 정책을 알렸다. 특목고의 설립과 학생 선발 권한(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갖고 있는 지역 교육계 수장인 교육감이 발표 직전에 중대 정책 사항을 안 것이다. 교육부 고위관계자도 "외고 입학 제한조치는 6월 초 공영형 혁신학교 관련 간부회의에서 갑자기 결정된 사항"이라며 "혁신학교 도입을 준비한 지난 1년 간 외고에 대한 내부 검토는 없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2006년 6월 22일 3면 참조)

교육부는 5월 중순 청와대와 공영형 혁신학교 관련 실무협의회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자리에서 교육부는 외고 현황을 설명했다. "전국 31개교 중 서울.경기.부산에 20개가 집중돼 교육의 지역적 불균형이 초래되고 있다. 대부분 외국어고가 당초 설립.운영 취지에 어긋나게 입시교과 위주로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는 등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6월 19일 교육부 보도자료 참조) 그러자 청와대측이 구체적 대책을 요구했고, 이 후 외고 집중지역의 향후 신설 자제 방침과 모집지역 제한 조치가 한꺼번에 나왔다는 해석이다.

또 6월 초 교육부와 열린우리당의 당정협의 때 국회의원들이 외고와 관련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참석 의원들이 "지방선거 과정에서 단체장 들이 저마다 외고 신설을 공약으로 밝혔는데 교육부가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후 교육부의 대통령 보고 때 '옛 학교'의 모집지역 제한이 '새 학교'정책에 포함됐고, 며칠 후 확정돼 공식 발표됐다.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을 교육부 스스로가 우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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