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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 시 회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즈음의 우리 시는 상당히 변모해 있다. 서정성으로의 회귀가 바로 그것이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의 시는 민중해방과민주화를 지향하고 사회적·정치적 갈증을 해소하려는 민중문학의 가열찬 자기투쟁과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화염병이나 투석, 혹은 이념적 뇌관이나 직격탄 같은 언어의 직설적인 표현과 반민주·반민중 세력의 척결을 지향하는 민중문학-노동문학, 나아가 목적달성을 위한 도구문학으로서의 문학적 자기훼손과 폄하 까지 드러내 보이기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즈음의 우리시는 상당히 변모하고 있다. 맑고 그윽하고 고요한 선적 깊이를 보여주는 서정적인 변화가 그것이다.
젊은 시인들의 실험적인 시편들-해체시 이후근간에 보여주는 도시적 서정 시편들이 그러하고, 신경림·고은·김지하의 최근작 시편들이 서정성의 마당 위에서 새로운 자기세계로 귀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삶 위에서「나」, 혹은「우리」의 가장 절실한 것이 가장 절실한 것을 필요로 하는 시인의 목소리로 떠올려질 때 시는 공감의 깊이와 넓이를 폭넓게 획득한다.
뛰어난 시적 성취의 기여와 시사적 가치의 변별을 떠나 이들의 시평들이 같은 시기에 서정적인 시편으로 기울어지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정시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서정시로 돌아온 이들의 최근 작품을 읽으면서 시인의 말을 변화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변화시키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머물 곳 없는 것 다 알고 그저 머무는 마음뿐 그리움도 아득히 사라진 지금 무슨 애틋함 있어 저렇게 눈밭에서 댓잎이 살랑입니까 …거기 멀리 앉아 날 부르는 분이시여 이제는 부디 내 안에 편히 부르소서> (김지하의『바램 2』)
이 시는 민족적 이상향을 소박한 개인적 정감과 맞물리게 한 만해 한룡운의『님의 침묵』에서 볼 수 있는 절실한 바람과 기원을 확인할 수 있다.
상처받은 자가 획득할 수 있는 오성의 깊이, 순화되고 절제된 말의 부드러움이 빚어내는 서정성은 공감대의 폭을 넓힌다.
직선적인 화법과 어투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비 시적인 요소가 걸러짐으로써 읽는 이의 가슴에 닿는 시 본래의 원형을 맛 볼 수 있다. <함께 사는 것이길 놈 없다네 그리움으로도 살구꽃 지는 날 숨막히는> (고은의 『마을 하나』).
고은의 단시『마을 하나』는 짤막한 한 편의 시면서도 장시나 장편서사 시에서 받을 수 있는 충격을 준다. 그것은 말의 섬광이라 표현해야 옳을 것 같다.
마치 무한한 넓이의 상징성을 포괄하고 있는 선 시처럼. 이 시에서의「마을」은 국지적인 작은 마을이 아니라 이 시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마을이다.
구태여 통일과 민족 대 화합을 소리 높여 외치는 통일민족시라 지칭하지 않더라도 이 한 편의 짧은 시는 함축과 절제·상징으로 드러나는 시의 묘수와 재미를 한껏 드러내 보인다.
서정시의 원형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서정시가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던지는 파장은 섬세한 만큼 크다. 이즈음 우리 시의 서정성 회복은 시 읽기의 맛을 더욱 높여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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