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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는 재능 기부 개미는 재물 기부, 이솝우화를 바꿔보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19) 

개미와 베짱이를 요즘의 관점에서 다시 그려본 삽화. 재능기부와 금액기부 등 상부상조의 삶을 강조하고 싶다. [사진 한익종]

개미와 베짱이를 요즘의 관점에서 다시 그려본 삽화. 재능기부와 금액기부 등 상부상조의 삶을 강조하고 싶다. [사진 한익종]

만일 이솝이 다시 살아나 오늘날 회자하는 개미와 베짱이의 내용을 들으면 기절할 일이다.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름내 열심히 일한 개미의 풍족한 겨울철 생활과 여름철 내내 놀기만 하던 베짱이가 겨울철 배고파 죽어간다는 우화. 우리나라 산업 발전기, 근면을 강조하던 그 시기에 늘 인용되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개미와 베짱이가 현대에 와서 나라별 특성에 맞는 버전이 있다고 한다. 일본판은 열심히 일만 하던 개미는 즐기고 쉬어야 할 겨울에 과로사로 죽고 그를 베짱이가 독차지한다는 버전이고, 미국식 버전은 열심히 일하고 겨울철 심심한 개미가 베짱이를 불러 공연을 시키고 베짱이는 공연료를 챙겨 잘 산다는 것이다. 러시아식 버전은 너 좋고 나 좋고 하는 공산당 사고가 결국은 모두 굶어 죽게 한다는 얘기다. 이런 우스갯소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번뜩이는 해학에 감탄하면서도 왠지 씁쓸하다.

이런 여러 버전의 개미와 베짱이 중 어떤 버전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에 와 닿을까를 생각해 본다. 욜로다, 소확행이다 해서 우리의 삶에 대한 가치는 많이 변했다. 미래를 담보하느라 일만 죽어라 하며 오늘을 져버리는 개미와 같은 삶은 저리 가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으니 미국식 버전이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는가.

그러나 이 버전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다. 너무 무책임하고 무계획적인 삶으로 치우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의 개미와 베짱이의 삶이 바람직할까? 기부와 봉사, 함께 하는 삶의 측면에서 패러디해보자.

‘여름날이었습니다. 베짱이는 시원한 그늘에서 바이올린을 켭니다. 개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합니다. 베짱이는 개미들이 스트레스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연합니다. 개미는 열심히 번 돈으로 자신을 위해 공연해주는, 재능 기부한 베짱이에게 생활비를 대 줍니다. 개미와 베짱이는 추운 겨울철에도 함께 지내면서 즐기며 잘 살았습니다.’ 베짱이는 재능기부를, 개미는 금액기부를 하는 셈이다. 공존의 지혜! 자, 이솝이 흐뭇해할까?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지혜

2018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 [자료 통계청]

2018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 [자료 통계청]

한국인의 3분의 2가 72세까지 일하고 싶어 한다는 통계 발표가 있었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일할 수 있는 나이를 65세로 규정 한 바 있으니 72세까지 일하고 싶어는 사람들의 바람이 실현되는 듯해 다행스럽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정년연장은 찬성하지만 61세 넘어서는 쉬고 싶다는 의견이다. 일본에서는 평생 일만 하다 죽으라는 얘기냐며 정년연장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점점 더 거세진다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단순히 생계유지를 위한 일의 연장은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일을 더 하고 싶다는 근거는 사람의 수명이 80세에서 100세, 120세까지 연장돼 노후가 과거 20년에서 40~60년으로 늘어나니 부의 부담을 이제 국가나 자식이 도맡을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단순히 생계를 위한 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평생을 개미와 같이 일만 하다가 일생을 마치기는 싫다는 욕구에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둘을 동시에 충족시켜 줄 방법은 없는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경제적 기대수준을 낮추는 일이다. 이 두 가지만 해결된다면 평생을 일해도 부담스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인생후반부 준비하는, 혹은 이미 인생후반부를 사는 세대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아직도 과거의 기준에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래 유망직종이 뭐니,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가져가야 하느니, 자산운용은 어떻게 해야 하느니 하며 제시하는 사람이나 귀 기울이는 사람이나 모두 경제적 문제, 개인적 이익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많다.

단언컨대 지금의 방법으로는 개인의 욕구를 전적으로 만족하게 할 대안은 없다. 왜냐고? 과거의 가치관으로는 그 욕구를 맞출 수도 없을뿐더러 느는 욕구에 맞는 미래의 청사진은 없기 때문이다. 대안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욕심을 줄여 가며 남보다 ‘더’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평생 모은 목판화로 원주에 고판화박물관을 설립한 한선학 관장이 아동들을 대상으로 무료관람 봉사를 하는 모습. [사진 한익종]

자신이 평생 모은 목판화로 원주에 고판화박물관을 설립한 한선학 관장이 아동들을 대상으로 무료관람 봉사를 하는 모습. [사진 한익종]

일전에 ‘톡톡 더,오래’ 강연의 말미에 어떤 청강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인생후반부 봉사로 생계유지가 가능하냐고. 내 대답은 ‘글쎄요’였다. 봉사는 봉사고, 봉사로 생계를 원한다면 그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워서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인생후반부의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게 봉사라고 역설할 수 있을까?

바로 좋아하는 일은 반대급부의 양적인 면에 연연하지 않게 하며 좋아하는 일은 오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자신에게 맞는 봉사의 종류는 수없이 많으며, 보상이라는 반대급부와 삶의 의미까지 갖게 하니 이보다 좋은 인생후반부 준비가 어디 있겠는가?

인생후반부를 전적으로 책임져 줄 국가나 기업은 없다. 이제 셀프부양의 시대다. 그런 인생후반부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삶의 의미를 유지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인 것이 NPO로 대변되는 복지단체가 많이 생기고 있으며 이들을 통해 봉사도 하고 일도 할 수 있게 돼 가고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인생후반부를 걱정하는가? 걱정하지 마라. 봉사를 업으로 삼아 함께 하는 삶을 영위해 보라. 마사이의 속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 가려면 함께 가라’를 명심하며!

키케로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인생후반부를 웅변한다. ‘인생이란 드라마의 다른 막들을 훌륭하게 구상했던 자연이 서툰 작가처럼 마지막 막을 소홀히 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네.’ 자신의 인생후반부도 훌륭하리라는 자신감을 갖고, 봉사로 자존감을 지키며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이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이다.

한익종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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