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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사학 옥죄고 교육발전 바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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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0년 경인여대 일부 교직원은 설립자인 재단 이사장이 100억원의 공금을 빼돌렸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학생들을 선동해 분규를 일으켰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금전 비리를 밝혀내지 못하자 과거 이사회 운영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엉뚱한' 이유로 이사장 등을 해임하고 임시이사(관선이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이사장 측은 무죄가 됐고, 교수 6명, 직원 1명은 명예훼손.업무방해.폭력 행사 등의 이유로 유죄가 확정됐다. 이사장 측은 당연히 학교 운영권을 되찾아야 하겠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일부 교직원과 임시이사 측이 방해하고, 교육부가 소극적이다.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이달부터 시행된 개정 사학법으로 인해 이런 일이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임시이사 파견 요건이 '법인 목적을 달성하기 불가능할 때'에서 '학교 운영에 중대한 장애가 생긴 때'로 대폭 완화됐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선 일부 교직원이나 개방이사가 문제를 일으키면 교육당국이 임시이사를 보낼 수 있다. 그러면 설립자가 학교를 되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부는 사학의 목줄을 더 강하게 쥐게 됐고, 사학에 대한 외부 입김이 세지게 됐다. 이러니 사학들이 "학교를 뺏으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임시이사의 권한은 너무 비대해졌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상임 이외의 정이사는 무보수이면서 임시이사에게 보수를 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심지어 재단의 학교 돈 유용을 막기 위해 재단과 학교 회계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는데도, 임시이사회에 대해선 학교 돈을 운영비.직원 인건비 등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재단이 등록금을 '전용'하는 길을 합법화한 악법이다. 한 대학총장은 "임시이사가 파견된 학교는 거덜날 것"이라고 한탄한다. 학생.교직원 모두 피해가 클 것이다.

임시이사들이 학교 정상화를 위해 열심히 나설지도 의문이다. 현재 임시이사가 파견된 사학 34곳 가운데 영남대는 17년, 조선대는 18년째 임시이사 체제다. 10개 대학.전문대는 정상화됐는데도 여전히 임시이사가 앉아 있다. 이 와중에 개정 사학법은 임시이사의 임기마저 없앴으니, 임시이사가 스스로 빨리 물러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임시이사의 상당수는 언제나 친정부 인사의 몫이었다. 임시이사 자리가 더욱 늘어날 터이니, 정권에 기웃거리는 인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사학의 관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은 뻔하다. 교육당국의 감사 남용, 정치권의 부당 개입, 불순세력의 음모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잘못된 사학까지 보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사학 설립자는 제왕적인 행동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비리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개정 사학법은 대학 평의원회.학교운영위원회 등 학교 구성원의 권한을 강화했다. 사학 비리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사학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리면 누가 사학을 운영하겠는가. 나라를 뺏겼을 때, 정부가 공교육 투자를 제대로 못했을 때 사재를 털어 인재를 키운 곳은 사학이었다. 지금도 그 역할은 막중하다. 사학 설립자를 최대한 존중하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는 너무 비교된다.

개정 사학법의 문제점은 이미 많이 지적됐다. 사학법인들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냈다. 교육부 내부에서도 위헌 요소가 많다는 의견이 있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누더기가 된 신문법을 보라. 개정 사학법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많은 사학은 불복종을 선언했다. 불필요한 혼란의 연속이다. 교육이 엉망이 되면 피해는 몽땅 학생에게 간다. 빨리 독소 조항을 고쳐 수습하는 것이 제대로 된 여당의 책임 있는 자세다.

오대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