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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동생 같은 난치병 요원 재검해달라” 탄원서 낸 구청 직원들

중앙일보

입력

“대한민국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A와 같은 자녀를 두고 있는 아버지 입장에서 군 생활을 할 수 있을 건강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돼 재검이나 면제를 검토할 수 있도록 재고해주실 것을 건의 드립니다.”

병역 판정 검사를 받고 있는 대상자들. 우상조 기자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병역 판정 검사를 받고 있는 대상자들. 우상조 기자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지난 22일 인천 미추홀구청 한 과장이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을 위해 병무청에 낸 탄원서다. 이 부서 직원 9명과 동료 사회복무요원, 사회복무요원 관리 담당 직원 등 11명이 각자 쓴 탄원서를 함께 제출했다.

인천 미추홀구청 루푸스 사회복무요원 #“통증 심한데 검사에서 이상 안 나와, #난치병 병역 대상자 서류 요건 완화 바라”

지난해 11월부터 이 부서에서 복무해온 A씨(24)는 희귀성 질환인 홍반성 루푸스를 앓고 있다. 이 병에 걸리면 면역체계가 신체를 공격해 피부·관절·혈액·장기 등에 이상을 일으킨다. 가벼운 발진부터 심한 통증,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까지 증상이 다양하다.

구청과 A씨 부모에 따르면 A씨는 중학생 때부터 갑자기 쓰러지거나 관절 통증으로 잘 걷지 못하는 원인 모를 고통을 겪었다. 지금은 햇볕을 쬐면 붉은색 발진이 심해지면서 뼈와 근육에 심한 아픔을 느낀다.

여러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어 2014년 첫 병역 신체검사와 이듬해 재검에서 병역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 소염진통제에 의존해 생활하다 피부 발진과 염증이 심해진 2017년 홍반성 루푸스 확진을 받고 그해 다시 한 재검에서 4급 보충역 판정이 나와 구청에서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미추홀구청 해당 부서 관계자는 “아픈 티를 내지 않고 밝고 성실하게 근무해오다 지난 2월부터 눈에 띄게 고통스러워했다”고 말했다.

A씨는 근무가 힘든 날엔 병가·연가를 썼지만 남은 복무 기간 증상이 어떻게 나타날지 몰라 가급적 통증을 참으며 일했다는 것이 구청 측 설명이다. 규정상 휴가를 다 쓰면 추가 사용 일수만큼 연장 복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당 부서 과장이 안타까운 마음에 사회복무요원 관리 담당인 손양승(50) 주무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5년째 요원 관리 업무를 해온 손 주무관은 “대부분 요원에게 문제가 생기면 우리 부서에서 함께 일하기 어렵겠다고 난색을 보이는데 부서 직원이 한목소리로 꼭 도와주고 싶다고 해 탄원서 제출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A씨 재검과 난치병 환자 재검·신검 기준 완화를 건의했다. A씨는 “통증이 없을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사회생활을 배웠다”며 “도움이 돼야 하는데 짐이 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A씨의 어머니는 구청의 관심과 배려에 고마움을 표하며 “이유 없이 병역 기피를 한다면 잘못된 생각이지만 병역 의무를 하려고 해도 주기 없이 찾아오는 관절 통증이 너무 심하다”며 “하지만 잠복기라 그런지 병원 검사에서는 수치상 이상이 드러나지 않아 진단서가 없으니 재검 신청이 어렵다”고 말했다.

사회복무요원 표지장. [연합뉴스]

사회복무요원 표지장. [연합뉴스]

이어 A씨 어머니는 “제 아들이 재검을 받지 못하더라도 다른 난치병 환자의 재검·신검 기준이 완화되고 병가 초과에 따른 연장 근무 규정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지난 15일 이 내용을 청와대 국민 청원에 올렸다.

이와 관련해 병무청 측은 “병역법 시행령 135조에 따라 사회복무요원의 질병 상태가 악화하면 해당 소속기관의 장의 허가를 거쳐 재검을 신청할 수 있다”며 “신체검사 기준은 국방부령에 따라 질병이나 심신 장애에 따라 급을 구분하고 기타 질병에 대해서는 병역 판정 전문 의사 등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인천=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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