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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도포·짱꼴라투·개만두…봄날의 전설은 계속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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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호 25면

[이태일의 인사이드피치] 2019프로야구 개막하는 날

새로 개장한 창원 NC파크. [중앙포토]

새로 개장한 창원 NC파크. [중앙포토]

23일은 2019년 프로야구 개막일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시즌 개막일을 ‘오프닝 데이(Opening Day)’라고 부른다. 우리가 ‘시작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메이저리그가 ‘스타트 데이(Start Day)’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그날이 그저 한 시즌의 첫날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그날은 첫날이지만 그냥 하루가 아닌 상징적인 날이다. 무대의 막이 열리고, 닫혀 있던 문이 열려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어떤 그런 의미가 있다. 그날이 메이저리그의 전설 조 디마지오가 말한 것처럼 ‘생일을 맞는 소년의 마음 같은’ 이유는 두근거리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다.

이종도 원년 개막전 역전 만루포 #정상호·서건창도 연장 끝내기 주연 #‘ 짱꼴라’ 장호연은 노히트노런쇼 #배영수는 만루포 2방 맞아 불명예 #37번째 역사 될 새 스타 탄생 기대 #새 구장 창원 NC파크 만남도 설레

개막일이 주는 기대는 그날이 아픈 과거와의 이별이며 희망의 시작이라는 데 있다. 이전 시즌 순위가 어땠든, 내가 흠모하는 선수와 팀이 어떤 아픔을 안겨 주었든 개막일이 시작됨으로써 그 고통은 사라진다. 그저 새로운 출발선에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는 달리기 선수를 연상하라. 그에게는 0승0패라는 성적표와 앞으로 벌어질 경기에서 승리의 환희로 성적표를 가득 채울 수 있다는 희망만이 있지 않은가. ‘아무도 지지 않은 날의 아침’. 그것은 개막일에만 모든 팀의 팬이 누릴 수 있는 희망의 순간이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연장 10회말 대역전극을 마무리 짓는 만루홈런을 날린 MBC 청룡의 이종도.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연장 10회말 대역전극을 마무리 짓는 만루홈런을 날린 MBC 청룡의 이종도.

개막이 주는 또 하나의 희망은 새로운 얼굴, 새로운 것과의 만남이다. 별이 될 유망주는 개막일이나 시즌 초반에 모습을 드러낸다. 야구팬에게 첫선을 보이는 ‘창원 NC파크’는 2016년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 이후 3년 만에 등장한 프로야구의 새 야구장이다.

야구의 신은 한국 프로야구에 드라마 같은 개막전을 선물했다.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은 역대 최고의 극적인 승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 개막전의 인상이 워낙 강하고 커서 그 이후의 개막전이 오히려 빛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날의 승부를 1983년에 발행된 프로야구 연감은 이렇게 전달하고 있다.

“5회초 이만수가 프로야구 첫 홈런을 날려 6대2로 앞설 때까지도 삼성 라이온즈는 사나운 이빨로 청룡을 이기는 듯했다. (6-6 동점을 이룬) 운명의 10회말 MBC는 김인식의 사구와 김용달의 2루타로 1사 2, 3루의 찬스를 맞았으나 유승안이 어정쩡한 타구를 날려 김인식이 홈에서 태그 아웃, 찬스를 잃은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2사 1, 3루. 이선희는 감독의 사인대로 백인천을 경원 4구로 걸려 보낸 뒤 이종도와 승부를 걸었으나 3구째 인코스 높은 볼을 이종도가 놓치지 않고 마음껏 휘둘렀다. 대역전극을 마무리 짓는 만루홈런이 프로야구 개막전, 그것도 연장 10회말에 극적으로 터진 것이다.”

김상엽, 92·93년 2년 연속 개막전 완봉승

83년 신인으로 데뷔한 OB베어스 장호연은 개막전 선발로 나와 완봉승을 거뒀다.

83년 신인으로 데뷔한 OB베어스 장호연은 개막전 선발로 나와 완봉승을 거뒀다.

마운드에서 느릿느릿 능글맞은 태도가 속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짱꼴라’라고 불렸던 장호연(전OB)은 역대 개막전 최고의 사나이다. 팀 이름은 두산으로 달라졌지만 유희관이 좀 더 잘하면 그 모습이 비슷할 것 같다. 장호연은 프로에 데뷔하던 첫해(1983년) 팀의 개막전 선발로 낙점을 받았고, 그 경기에서 MBC를 상대로 1점도 내주지 않고 완봉승을 거두었다. 신인 선수가 데뷔전에 선발로 나서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그 경기를 완봉승으로 장식한 것은 좀처럼 나오기 힘든 기록이다.

이후 팀의 단골 개막전 선발이 된 장호연은 1988년 롯데를 상대로는 개막전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개막전 노히트노런은 메이저리그에서도 1940년 밥 펠러(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기록한, 딱 한 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다. 장호연은 그해까지 개막전 4연승을 기록하다 1989년 MBC를 상대로 첫 패전을 기록했지만 이듬해(1990년) 신생팀 LG를 상대로 또 한 번 완투승을 기록했다. 그는 역대 개막전 성적 6승2패, 노히트노런 포함 세 번의 완투승을 기록했다. 장호연 이외에 개막전에서 강했던 투수로는 1992, 1993년 2년 연속 개막전 완봉승을 기록한 김상엽(전 삼성)이 있다.

1982년 개막전이 드라마 같은 개막전이었다면, 뉴 밀레니엄의 시작, 2000년 대전에서는 만화 같은 개막전이 펼쳐졌다. 4월 5일 현대-한화전으로 펼쳐진 개막전에서 원정팀 현대는 1회초 외국인 타자 퀸란의 홈런을 시작으로 이숭용, 박종호, 박재홍, 심재학 등이 무려 10개의 홈런(안타가 아니고 홈런이다)을 때려냈다. 팀 홈런 10개는 경기 최다는 물론이고 개막전 역대 팀 최다홈런 기록이다. 또 홈팀 한화 역시 송지만의 연타석 홈런 등 4개의 홈런을 기록해 프로야구 한 경기 최다홈런 신기록(14개)을 세웠다. 현대는 17-10으로 크게 이겼다. 그날 한화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3개의 홈런을 내주고 패전투수가 된 선수가 지금 한화 감독 한용덕이다.

원년 이종도에 이어 개막전에서 연장 끝내기 홈런을 때린 영웅은 그 이후 2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2008년 정상호(SK)는 문학구장에서 LG를 상대로 연장 11회 대타 끝내기 홈런을 때렸고 2015년 한화-넥센 목동 경기에서는 4-4로 맞선 연장 12회 넥센 서건창이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때렸다.

2000년 현대-한화전 홈런만 14개 나와

2013년 배영수(당시 삼성)는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오재원과 김현수에게 만루홈런 두 방을 맞았다.

2013년 배영수(당시 삼성)는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오재원과 김현수에게 만루홈런 두 방을 맞았다.

타자가 홈런의 주인공이라면 투수는 홈런의 피해자일 수 있다. 개막전에서 가장 아픈 홈런의 피해자는 1982년 이선희(삼성)와 함께 2013년 배영수(삼성)를 꼽을 수 있다. 배영수는 그해 3월 30일 대구 두산전에서 오재원(1회), 김현수(4회)에게 각각 만루홈런을 허용했다. 개막전, 만루홈런, 두 개. 그 경기 이후 ‘개만두’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가 생겨났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허도환(SK)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던 마지막 공은 오늘 개막전을 맞아 다시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멈추었던 야구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이태일 전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를 거쳐 인터넷 네이버 스포츠실장을 지냈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대표이사로 7년간 재직한 뒤 지금은 데이터업체 스포츠투아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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