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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필요한 배고픈 아이들 사진, 왜 항상 웃고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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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더,오래]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2)

최고급 아파트를 팔던 18년 차 마케터에서 NGO 신입생으로, 남 도우러 왔다가 내 마음 수련 중이다. 직장이 아닌 인생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어 선택한 길. 돈과 지식보다 진심 어린 마음이 더 위대한 일을 해낸단 걸 배우고 있다. 더 오래 사랑하며 살고 싶은 중년 아줌마의 고군분투 NGO 적응기. <편집자>

필리핀 수상가옥의 모습. 수상가옥 주변은 쓰레기마을을 방불케 했지만, 이곳에서 만난 어린이의 미소는 귀엽고 아름다웠다. [사진 한국컴패션 제공]

필리핀 수상가옥의 모습. 수상가옥 주변은 쓰레기마을을 방불케 했지만, 이곳에서 만난 어린이의 미소는 귀엽고 아름다웠다. [사진 한국컴패션 제공]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후원을 시작하게 만든 사진이 있다.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한장의 사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망울, 파리가 잔뜩 앉아 있는 얼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팔을 가진 병든 아기의 모습. 이런 사진 속 모습은 연출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는 현실이다.

무인 자동차와 인공지능(AI) 로봇이 실현된 21세기에도 가난한 어린이들은 병마와 싸우고 배고픔을 이겨내야 하는 시간을 살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알리고 도움을 줄 수 있는 후원자들을 찾는 것이 내가 컴패션에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처음에 컴패션의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적잖게 당황했다. 60년이 더 된 양육기관인데 사진 속 어린이들은 가난과는 거리가 먼 환한 웃음을 담고 있었다. 마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듯 보였다.

이래서는 이들에게 후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리며 다른 기관보다도 1.5배는 높은 후원금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PR팀을 만나 공격적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마케팅의 기본을 알기는 하나?’로 시작해 이론을 늘어놓으며 꼰대 짓을 했다. 그때 내가 들은 단 한 마디!
“만약 이 아이가 실장님 딸이라면… 어떠실 것 같아요?”

아차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아이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으로 이들을 돕겠다고 왔지만, 그 어린이들을 내 아들, 내 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그들은 저 먼 곳에 있는 불쌍한 어린이들이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 그 이상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을 후원하면서도 컴패션 어린이들의 미소 안에 숨은 비밀을 알지 못했다.

"사진 찍지 말아 주세요”

서정인 대표님의 책 ‘고맙다’를 읽으면서 그 미소의 비밀이 풀렸다.

필리핀 세부의 철거민촌에서 살고 있는 컴패션 센터의 어린이. 무단 점유로 강제로 집을 철거 당했다가 재판에 계류되어 이사도 가지 못하고, 부수면 다시 짓기를 반복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제공]

필리핀 세부의 철거민촌에서 살고 있는 컴패션 센터의 어린이. 무단 점유로 강제로 집을 철거 당했다가 재판에 계류되어 이사도 가지 못하고, 부수면 다시 짓기를 반복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제공]

「2003년 한국이 후원국이 된 첫해,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담아 후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필리핀 쓰레기 마을을 방문했다. 한 아이가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것을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바로 카메라를 들었는데, 카메라 렌즈 속에서 아이의 눈빛과 마주쳤다.

까만 두 눈 속에서 말 없는 슬픔과 공허함을 보았고 아이의 눈은 ‘저도 알아요. 여기 버려진 쓰레기처럼 저도 버려진 존재라는 걸요. 미래도 희망도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런 저라도, 제발 저를 그렇게 보지는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미래도 희망도 없이 버려진 아이의 모습을 담으려 했지만, 어리고 작은 영혼이 부끄러움과 수치로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다. ‘저를 찍지 말아 주세요.’」

어린이들이 가난으로 인해 노출되는 환경은 상상을 초월한다. 쓰레기 마을의 악취나 돌가루로 숨쉬기 힘든 채석장, 마약과 매춘이 일상인 거리. 현실의 가난은 너무나 비참하지만 사진 속 어린이들의 미소가 아름다운 것은 그들의 존귀함을 부모의 마음으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수상가옥 주변에서 만난 어린이. 밝은 미소가 참 예쁘다. 나는 아이의 엄마가 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도움의 방법을 찾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제공]

수상가옥 주변에서 만난 어린이. 밝은 미소가 참 예쁘다. 나는 아이의 엄마가 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도움의 방법을 찾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제공]

기부 시장은 타인의 결핍을 채워주는 이타적인 소비가 일어나는 곳이다. 소비의 결과가 구매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부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연민을 극대화하는 감성적 어필이 필요하다.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진 한장이 때론 열 마디 말보다 힘이 세다. 감성적인 요소가 정보적인 요소보다 감동을 주고 텍스트보다는 영상이나 이미지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더 많다.

일부러 빈곤 포르노를 이용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때론 나도 이들의 비참한 상황을 접하면 안타까움에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다. 더 많은 어린이를 위한 선한 일이라며 모금 결과와 후원자 숫자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정말 이들을 위하는 마음을 지녔는지, 그들을 인격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본다.

어린이를 돕는 일은 부모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만약 내가 이 아이의 엄마라면,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든 상황 속에 있더라도 내 자식의 비참한 사진으로 한 끼 식사를 구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절박함 속에서 내 자식을 건져내는 그 간절한 마음. 그게 진정한 돕는 자의 마음이 아닐까.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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