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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경찰과 검사, 이제 협업하지 말라는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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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이다. 공권력의 최일선에서 공동체를 위협하는 범죄와 목숨걸고 싸운다. 그 과정에서는 노골적인 물리력의 행사나 강제수단의 동원이 가능하다. 수사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수사권은 잘못 쓰면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검사의 통제를 받도록 해 두었다. 그런 만큼 애초부터 경찰에게 검사는 거북스러운 존재다.

검사의 통제하에 있더라도 경찰이 범죄 현장에서 수사를 개시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수사는 그들의 권한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물이 기록의 형태로 검사에게 넘어가 경찰 의견대로 기소 또는 불기소되는 경우에는, 검사와 마주칠 일이 없다. 이때 검사의 통제는 가능성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경찰이 거북스러운 검사와 마주치는 것은 일부 사건에서다. 10% 미만이다. 그런 마주침의 창구가 바로 검사의 수사지휘다. 영장신청에 대해 보완하라고 돌려보내는 경우가 그 실례다.

수사 지휘는 주로 검사의 의견이 전달되는 창구가 되지만, 경찰이 지휘받기를 자청하는 경우도 있다. 꼭 영장을 받아내고 기소되게 하겠다고 벼르는 사건이라면 검사에게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수사진행 경과 설명이나 법적용에 관한 의견 조율의 창구로 수사지휘를 활용하게 된다.

법의 길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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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경찰은 수사권 조정 차원에서 수사지휘를 없애려고 할까. 나름의 명분이 있겠지만, 검사의 지휘 행태에 대한 불만에서 싹이 텄을 것 같다. 미제 처리에 쫓기며 습관적으로 내뱉는 거친 말투, 결정적 증거확보의 실기(失機)에 대한 신경질적인 질책 등이 거부감을 줬을 수 있다. 검사에 대한 불신도 한 몫했을 것 같다. 자신들도 수사를 거칠게 하다가 여론의 질타를 자주 받으면서 남을 감시하겠다고 하니 승복할 리 없다. 수사지휘를 빙자해 사건을 부당하게 가로챈다는 피해의식도 있는 것 같다.

지난날 수사지휘를 통한 협업은 지금보다 원활했다. 수사지휘 제도를 경찰이 대승적으로 수용했기에, 대면하여 소통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어린이 유괴살인 같은 중요사건이 발생하면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차려졌고, 검사실에 장기간 파견 나가 도와주기도 했다. 이때 검사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경찰의 노련함과 현장 감각에 검사가 끌려간 경우도 있었다. 그런 소통은 2000년대에 들어와 거의 사라졌다. 수사권 조정 이슈가 불거져 팽팽한 신경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소통은 문서를 주고받는 것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사보완 사항을 장황하게 써내려 보내는 식이다. 그러니 지휘가 공허해지고 핵심을 벗어나기도 하고, 이를 받아든 경찰은 검사를 불신하게 된다. 그런 악순환 속에서는 협업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앞으로 수사지휘 제도가 없어지면 협업의 창구가 아예 막혀버릴 것 같다.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통과되면, 넘겨받은 완제품을 검수해보고 필요하면 클레임을 하는 수준의 보충적 수사지휘만 남는다. 지휘 행태와 방식의 개선으로 풀지 않고 지휘 자체를 없애버리는 극약 처방을 꼭 써야 하는 걸까. 지휘는 검사와 담당 경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휘제도를 없애 대등한 관계에 둬야 경찰이 검찰을 견제할 수 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수사분야 베테랑 경찰에게 이것만은 꼭 물어보고 싶다. 그동안 검사 지휘를 방패삼아 막아오던 경찰 내부 윗선의 입김을 앞으로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고.

문영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