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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그 놈 목소리'…불법사금융피해 3건 중 1건 ‘보이스피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2월 부산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KB국민저축은행의 ‘저금리 정부 특례보증’ 대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전화 상담원은 “신용점수가 낮아 A 캐피탈에서 받은 기존 대출 일부를 갚아야 한다”며 A캐피탈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김 씨는 곧바로 A 캐피탈에 전화해 안내받은 계좌로 250만원을 송금한 뒤 다시 KB 국민저축은행에 전화해 대출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공탁금 330만원을 입금해달라고 요구했다. 이후에도 재차 추가로 공탁금을 넣어야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김 씨는 “거래를 취소할 테니 입금한 330만원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 뒤로 상담원은 자취를 감췄다. 알고 봤더니 KB국민저축은행은 물론 A 캐피탈 전화번호는 모두 가짜였다. 김 씨는 보이스피싱으로 580만원 손해를 봤다. 상환한 줄 알았던 빚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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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불법 사금융불법 사금융피해 3건 중 1건이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그놈 목소리’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암호화폐 투자를 빙자한 유사수신 피해도 늘고 있다.

12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8년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 운영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센터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12만5087건으로 전년 대비(10만247건) 24.8% 증가했다. 2016년 이후 주춤했던 증가세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이중 대출 관련법정 최고이자율, 채무조정 방법 등을 문의하는 서민금융 상담이 7만6215건으로 전체 신고 건수의 약 61%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검찰이나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가 4만2953건(34.3%)으로 많았다.

보이스피싱 사기범 ‘그놈 목소리’에 속은 피해자와 피해 금액도 눈에 띄게 늘었다. 피해자는 지난해 4만8743명으로 전년보다 58% 증가했다. 전체 피해액은 금감원이 2014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큰 금액인 4440억원에 이른다. 하루 평균 134명이 보이스피싱에 속아 평균 910만원 손해를 봤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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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대부 신고 건수는 2969건으로 1년 전보다 5.4% 많아졌다.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법정 최고금리(24%)를 초과해서 돈을 빌렸다가 피해를 보고 신고한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한 금리로 사채를 썼다면 24%를 초과한 이자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갚지 않아도 된다.

유사수신은 전년보다 25%가량 늘어난 889건이 접수됐다. 2017년부터 시작된 암호 화폐 열풍과 관련해 암호 화폐 투자를 빙자한 유사수신이 많아진 탓이다. 암호 화폐 관련 피해만 604건에 이른다. 전체 유사수신 신고 건수의 68%를 차지한다.

금감원은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 중 범죄 혐의가 드러난 230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유사수신이 139건이고, 미등록대부를 비롯해 불법 채권추심, 대출 중개수수료 수취 등 불법 사금융 관련 91건이었다. 보이스피싱 신고된 3776건은 해당 계좌를 즉시 지급정지를 조치해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화금융사기 예방대책 목적으로 피해자가 사기범에게 속아 돈을 송금했을 때 피해자가 상대 은행에 피해금의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염지한 기자 yjh@joo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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