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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희망은 해맑은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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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희망은… 애들이에요. 애들이 없으면… 나도 없어요. 애들이 있기 때문에… 나도 존재할 수 있어요. 엄마 힘들다고… 애들을… 죽여요? 말도… 안돼요!"

▶ 경기도 동두천의 지역봉사단체인 '천사운동본부'의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키다리 아찌' 이종삼(37)씨 [이병구 기자]

한 마디 한 마디, 힘들게 말을 꺼내던 그는 흥분한 듯 몸을 비틀었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데 잘 안되니까 손짓이라도 하려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팔조차 맘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키다리 아찌' 이종삼(37)씨. 그에겐 아이가 수십명, 수백명 있다. 아니 수천, 수만명인지도 모르겠다. 이 땅의 소년소녀 가장들, 희망을 잃은 아이들, 희망을 찾는 아이들이 모두 그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李씨가 경기도 동두천의 지역봉사단체인 '천사운동본부'(www.hope1004.com) 지하 사무실에 앉아 하루종일 하는 일은 바로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또다른 별명은 '희망지기'다. 그런데 그는 그 아이들이야말로 자신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 아이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노라고….

지난 26일 오후에 찾아간 천사운동본부 사무실은 어수선했다. 10월 4일 처음 개최하는 '천사데이' 행사 준비 때문이었다.

이종삼씨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옆에 있던 백두원 실장이 "여기자라서 인터뷰를 허락했을 거에요. '여자 밝힘증 환자'거든요. 어쩐지 오늘은 머리까지 감고 와서 기다리고 있더라" 하고 놀리자 "흐흐흐"하며 수줍은 듯한 미소로 맞는다.

예상치 못한 분위기였다. "정말이세요? 그럼, 여자친구도 많겠네요"하고 얼른 장단을 맞추자 또 한번 생각 못한 답이 나왔다. 왼손을 힘겹게, 그러나 자랑스럽게 치켜보이며 "여기… 커플링도 했어요…흐흐"한다. 이 단체를 돕는 한 동갑내기 여성에게 '찍혔다'고 했다. 지난 3월 처음 만난 뒤 좋은 감정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라며, 내년쯤 공개할 테니 기다려 달란다.

그렇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전문직에 위트있고, 여성(사실 남성도!)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까지 갖춘 최고의 매력남이었다. 단, 몸무게 45㎏, 지나치게 마른 게 흠이랄까.

뇌성마비 장애인이라 인터뷰가 힘들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 기자의 편견에 불과했다. 하긴 중앙일보 뉴스사이트 개편과 함께 신설된 e-칼럼에 그의 글을 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도 모두 반신반의했었다. 아무리 '컴퓨터 도사'라지만 과연 매주 '제대로 된' 칼럼을 써줄 수 있을까 하는…. 하지만 원고 청탁에 대한 그의 답장과 첫 글은 그런 우려를 한순간에 날려보냈다. 몇 개의 오자를 제외하곤 유머 넘치는 완벽한 글이었다.

이날도 "아줌마 기자라 (아기처럼 발음이 안 좋은 이종삼씨의) 말을 잘 알아듣는 것 같다"는 白실장의 칭찬(?)까지 들으며 인터뷰는 잇딴 웃음 속에 술술 진행됐다.

◇"세상이 조금 더 일찍 보고 싶어 예정일보다 1개월 먼저 나왔지요. 그런데… 세상으로 나오기까지는 36년이란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답니다."(키다리 아찌가 직접 쓴 소개글 중에서)◇

두 딸에 이어 태어난 아들. 집안의 기대는 남달랐지만 그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였다. 용하다는 무당, 점쟁이를 다 찾아보고 이름도 바꿔보고 조상 묘까지 이전해봤다고 한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8세가 되기까지 그는 앉지도 기지도 못해 방을 굴러 이동했다.

그러던 그가 세상에 나온 건 2년 전 천사운동본부의 모체 격인 '참빛'을 통해서였다. TV를 통해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이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본 李씨가 그 홈페이지 게시판에 먼저 글을 올리며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천사운동본부가 발족되자 18번째 천사로 등록했다.

이제 그가 없는 천사운동본부는 상상하기 힘들다. TV 등을 통해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그는 동두천 '스타'이자 이 단체의 상징이 됐다. 직접 하는 일도 많다. 홈페이지 관리는 물론, 회계업무까지 맡아 은행에도 스쿠터를 몰고 다닌다. 또 홈페이지나 개인 e-메일을 통해 쏟아지는 아이들의 사연에 일일이 답해 주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왼손 하나만으로도 컴퓨터는 물론 조그만 휴대전화 자판까지 기막히게 잘 친다.

인터뷰를 한 이날은 오전에 부모가 없는 한 남매를 위해 초등학교 운동회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손 한번… 흔들어 주고…왔어요. 스타 옆에 있으면… 같이 스타가 되니까… 좋아해요… 흐흐"

그 와중에도 컴퓨터와 관련해 SOS를 치는 곳에는 언제든지 나간다. 물론 무료다.

◇"글을 배우고 머리가 커지면서 저의 나들이는 줄어들었고 밖보다는 방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사회에 대한 불만, 신체에 대한 불만은 없었지요. 다 지 팔자려니 하며…^ ^;"◇

李씨를 일으켜 세운 이는 바로 아버지였다. 스파르타식 교육은 예상보다 효과가 빨리 나타났다. 9세 때는 세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툭하면 넘어져 머리도 수없이 깨졌다 (지금도 이발을 하러 가면 '땜통'이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학교엔 갈 수 없었다. 15세가 넘도록 문맹이던 그에게 큰 누나가 글을 가르쳐 줬다. 스폰지처럼 그는 지식을 쑥쑥 빨아들였다. 그러던 중 컴퓨터 시대가 시작됐다. 아버지가 또 한번 제안했다. "컴퓨터 사주면 잘 할 수 있겠니?"라고. 그해 가을부터 그는 뭔지도 모르는 글을 읽었다. 무작정 컴퓨터를 사준다는 말에 열정적으로….

85년 3월, 드디어 그는 컴퓨터란 걸 처음 손에 넣었다. 이미 사용법 및 프로그램 작성법까지 쭉 꿰고 있는 터였다. 95년부터는 한글 문서 소프트웨어와 집계용 프로그램 등을 제작해 히트치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뇌성마비 치료술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알아봤다. 두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단 하나, 수술을 한 뒤 성격이 좋은 쪽으로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뇌를 어떻게 건드렸는지(?) 사람들 앞에 나설 용기가 생겼다며 그는 또 씩 ̄ 웃었다.

◇"처음에 전동 휠체어와 스쿠터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하더군요. 저는 주저없이 스쿠터를 택했고, 사회사업팀장님께서 물으셨습니다. '휠체어가 더 비싼데 왜 스쿠터?''폼나잖아여…히 ̄'"◇

99년에 뇌성마비 합병증으로 인대에 문제가 생겨 신촌 세브란스 재활의학과에 입원했다. 그러다가 병원 컴퓨터에 올린 글 하나가 신촌세브란스 병원 소식지에까지 실리게 됐다. 원고료 5만6천7백80원. 그가 글을 써서 처음 올린 수입이었다.

2001년 1월 퇴원을 하면서 담당의였던 박창일 교수로부터 스쿠터를 선물받았다. 그 뒤로 스쿠터는 컴퓨터 다음으로 그에겐 없어서는 안될 분신이 됐다.

그런데 그 스쿠터를 최근 잃어버렸다. 지난 18일 '천사데이' 준비 때문에 야근을 하고 새벽에 나왔는데, 건물 문 앞에 세워놓은 스쿠터가 사라지고 없었다. "미쳐요… 미쳐. 그거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다행히 곧 스쿠터 한 대를 무료로 대여받을 수 있었지만 한달 뒤엔 돌려줘야 한다. '천사데이' 주요 행사인 마라톤에도 그 스쿠터를 타고 참가할 예정이었는데…. 그래도 스쿠터를 가져간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모두 지 팔자려니, 나보다 더 사정이 나쁜 사람이려니, 하면서….

◇"사람들은 저의 모습을 보며 말을 합니다. '지랄하고 있다… 희망은 지가 필요하면서… 새끼… 육갑하고 있어….' 하지만 저는 이런 말 신경쓰지 않는답니다. 제가 육갑을 하던 꼴값을 하던… 그것 제 몫이며 내 팔자라고 믿고 계속 육갑을 하고 있네요. 흐흐.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리 형편없는 미물이라도 세상에 의미가 있고 몫이 있기에 세상에 태어난 것이라고." ◇

李씨는 아직 '키다리 아저씨'란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키다리 아저씨'란 별명은 e-메일을 통해 알게된 한 물리치료사가 지어줬다. 남몰래 후원하는 고아 소녀와 편지를 주고 받다 사랑을 싹틔우는 키다리 아저씨의 이미지가 그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아이들은 역시 그 또래답게 '키다리 아찌'라고 부르길 더 좋아한다.

그에게 물었다. 어머니께서 그래도 한 시름 놓으셨겠다고.

"기쁨 반… 걱정 반이죠. 이놈이… 어떻게 살아갈까…. 하긴 배우지도… 못한 놈이… 학교에서 강의도 하니까… 어머님이 말도 못하게 좋아하셔요."

내내 웃던 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지난 세월, 눈물로 지새웠을 어머니, 대견스럽게도 세상에 나섰지만 아직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아들 때문에 걱정을 놓지 못하고 계실 어머니 생각에 새삼 가슴이 아려오는 듯 했다.

김정수 기자

▶ [디지털국회]장애인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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