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수강신청 대란…학습권은 뒷전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남윤서 기자 중앙일보
남윤서 교육팀 기자

남윤서 교육팀 기자

예나 지금이나 학기 초 대학가에서는 ‘수강신청 대란’이 벌어진다. 원하는 수업을 신청하기 위해 1990년대에는 학교 전산실 앞에 밤새 줄을 섰지만, 지금은 각자 개인용 컴퓨터 앞에서 ‘광클’(미친 듯 클릭)을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대란이 전공기초나 졸업 필수 과목에서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제때 수강신청에 실패하면 기초 과목을 듣지 못한 채 고학년이 돼버린다. 졸업 필수 과목을 넣는 데 실패한 학생들은 강의를 거래하거나 ‘빌넣’(교수에게 빌어서 넣기)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란 해결을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이 나오기도 한다. 연세대는 2015년부터 ‘수강신청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했다. 학생마다 72점씩 마일리지를 준 다음 신청 과목에 베팅하도록 한다. 한 과목에 최대 36점까지 걸고 베팅 점수가 높은 학생이 우선 신청된다. 꼭 듣고 싶은 과목을 위해 36점을 ‘올인’하는 방법도 있고, 여러 과목을 듣기 위해 분산 투자를 하는 방법도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강신청을 도박판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밖에 이전 학기 학점에 따라 우선권을 주는 ‘수강신청은 성적순’ 방식, 추첨으로 선발하는 ‘로또’ 방식을 택한 대학도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근본적 해결 방법은 학생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강의 수요를 미리 파악하고 다양한 강좌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대학은 여전히 교수 일정에 따라 강의를 개설하는 공급자 위주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수강신청 대란은 한층 심해졌다. 예를 들어 고려대 총학생회는 전년도 1학기와 비교해 전공과목 74개, 교양과목 161개가 감소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강신청에 실패한 학생이 많아지면서 고대생이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반도체공학 삽니다” “기초통계학 구합니다” 등 강의를 거래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8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이 강사 수 줄이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강사가 줄어든 만큼 강좌 수가 줄면서 수강신청 제약은 커진다. 강사법이 본격 적용되는 2학기에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강사법은 강사에게 교수 지위를 부여하고 방학 중 임금을 주는 내용을 포함한다. 10여년간 등록금을 동결한 대학은 재정 부담을 호소한다. 강사 단체들도 정부 재정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올해 확보한 강사 지원 예산은 288억원. 대학이 필요하다는 금액(2300억원)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학생 학습권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도록 정부와 대학의 대책이 시급하다.

남윤서 교육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