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미, ‘불화설’ 속히 진화하고 북 비핵화에 한몸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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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의 대북정책이 엇박자 양상을 보이면서 양국간 불화설이 분출하고 있다. AP·블룸버그 등 미국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편을 든다”고 분석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결별설’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한미관계가 “물 샐 틈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정부, 섣부른 제재해제 거론이 워싱턴 의심 초래 #굳건한 한미 공조 속 북이 ‘빅 딜’ 받게 촉진할 때

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 다음날인 3·1절 기념사에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도 “지난해 합의된 남북협력 사업들을 속도감 있게 준비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조명균 통일장관은 즉각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방안을 마련해 대미 협의를 준비하겠다”고 보고했다.

미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하자 영변 외 추가 핵시설 정보를 꺼내며 “핵과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을 전부 폐기하기전엔 받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5일 한 발 더 나가 “선박 간 환적을 못하도록 옥죄는 등 북한을 더 압박하는 방안을 관계국들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연간 1억5천만 달러 현찰을 평양에 안겨주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방침을 거론중인 상황이다. 워싱턴 입장에선 서울이 대놓고 역주행을 선언한 것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이 북·미의 대화 궤도 이탈을 막는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을 거치면서 문제의 본질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임이 분명해졌다. 알려진 핵 시설만 없애면 제재를 푸는 ‘스몰 딜’은 설 곳이 없어졌다. 미국과 굳건한 공조로 북한에 제재·대화를 병행해 ‘빅 딜’에 응하도록 유인하는 게 최선이자 유일한 옵션이다.

북한은 회담 1주가 지나도록 미국의 ‘빅 딜’ 요구엔 침묵하면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시설 일부를 복구하는 등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이런 터에 섣불리 개성·금강산 제재 해제를 추진하는 건 전략적으로 부적절한데다 실현 가능성도 낮다. 북한에 벌크캐시(대량현금) 송금을 금지한 안보리 제재 2087호 등 유엔·미국의 이중 삼중 제재망에 바로 걸리게 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제적 제재의 틀을 유지할 때이지 제재 망에 구멍을 뚫어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회피할 틈을 줄 때는 아니다. 남북관계만 잘되면 북한이 비핵화에 응할 것이란 가정은 하노이에서 이미 ‘거짓’으로 검증됐다. 한미간 소통과 탄탄한 공조를 통해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를 실현해 내면 그 때 지속가능한 남북협력의 문도 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