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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내상’ 김정은, 미국 겨냥 ICBM 심리전 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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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참석한 서훈 국정원장. [임현동 기자]

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참석한 서훈 국정원장. [임현동 기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 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과 평양 외곽 산음동 미사일 연구단지에서 잇따라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대미 심리전 카드로 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 동창리·산음동 움직임 왜 #미, 본토 위협 ICBM에 가장 민감 #“미국 협상 유인용 저강도 도발” #소식통 “북 중간간부 경제 큰 불만 #대북제재 완화 협상 서두를 수도”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5일(현지시간)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재건 움직임이 있다고 밝혔다. CSIS와 38노스는 닫혀 있던 덮개가 열려 미사일 발사대가 보인다거나, 미사일 이동 구조물이 다시 조립되고 벽이 세워지고 있다며 지난해 폐기 동향을 보였던 미사일 발사장을 북한이 다시 복구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가정보원도 지난 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북한이 동창리 발사장의 철거시설 일부를 복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중에서도 미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게 ICBM이다. 핵무기를 미국 본토로 쏘는 능력이라 북한의 ICBM 개발은 미국 유권자들의 불안감과 직결될 수 있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ICBM 시험 발사 장소로 북한은 2016년 2월 이곳에서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산음동 미사일 연구단지는 미사일 개발·생산·조립·시험 등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곳이다.

물론 동창리와 산음동의 움직임은 북·미 정상회담 이전부터 있었던 만큼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과 직결시켜선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정상회담 이후에도 동창리의 재건 움직임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대미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38노스가 5일(현지 시간) 공개한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모습. 엔진 시험대 크레인 등이 다시 조립되고, 연료 저장 벙커 위 지붕이 신축됐다. 촬영시점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틀 뒤인 지난 2일이다. [연합뉴스]

미국의 38노스가 5일(현지 시간) 공개한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모습. 엔진 시험대 크레인 등이 다시 조립되고, 연료 저장 벙커 위 지붕이 신축됐다. 촬영시점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틀 뒤인 지난 2일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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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거론했다. “미국이 (비핵화에) 상응하는 실천 행동을 한다면 비핵화는 빠른 속도로 전진할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우리 인내심을 오판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길’은 그간 자제해 왔던 미사일 및 핵 개발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 일단을 보인 것”이라며 “북한은 과거 협상이 결렬되면 군사적 도발을 하거나, 도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는데 동창리 건은 후자로 정교한 심리적 도발”이라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동창리 발사장 등을 언제든 가동할 수 있는 상태라는 걸 미측에 알려 향후 협상 카드로 쓰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단 북한 전문가들은 심리전 카드가 벼랑끝 도발 카드로 바뀔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게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미사일 시험 발사와 같은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약속 파기가 돼 북·미 협상은 물론 북·미 관계의 파국을 부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북제재를 더욱 강화하고, 군사적 압박을 재개할 명분이 된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는 식의 고강도 도발은 향후 협상력을 스스로 깎는 일이니 안 할 것”이라며 “미국을 협상장으로 불러들이는 정도의 저강도 도발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선양에 파견된 북한 중간 간부들 사이에 이번 회담 결렬을 두고 노골적인 비판이 나온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과거 같으면 회담이 실패해도 수령님 하는 일이라고만 했는데 지금은 경제제재로 워낙 힘들다 보니 불만을 표출한다”며 “전에 없던 일로 김정은의 리더십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김 위원장으로선 엘리트들의 동요를 막을 필요가 커진 만큼 대북제재 완화라는 성과 도출을 위해 오히려 협상장에 더 빨리 복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백민정 기자 baek.minj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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