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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못 사 미세먼지 무방비 노출되는 저소득층..."숨 쉬는 공기마저 빈부 격차"

중앙일보

입력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6일째 시행되고 있는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초등학교에 설치된 미세먼지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2019.3.6/뉴스1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6일째 시행되고 있는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초등학교에 설치된 미세먼지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2019.3.6/뉴스1

6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산책나온 노인 40여명 가운데 마스크를 낀 이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맨 얼굴로 공원을 거닐던 문일주(78)씨는 "마스크를 왜 쓰지 않았냐"는 질문에 “미세먼지 때문인지 며칠 목이 칼칼하고 가래가 끓는다. 그렇지만 마스크 살 돈이 없다. 돈 있으면 반찬을 하나 더 사먹어야지”라고 말했다. 문씨의 집에는 공기청정기가 없다. 정부가 미세먼지 심할 때 “어린이나 노약자는 실외 활동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권고하지만, 문씨는 따를 방도가 없다. 그는 “꽉 막혀있는 집보다는 여기가 나을 것 같아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종로구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97㎍/㎥까지 치솟았다.

초등학생ㆍ중학생 자녀를 둔 김세연(48ㆍ서울 영등포구)씨는 몇년 전부터 매달 미세먼지 차단용 마스크를 한 박스씩 주문한다. 김씨는 얼마 전부터 아이들에게는 흡기 밸브가 달린 기능성 마스크를 사준다. 그는 “아이들이 둘 다 안경에 김이 서려 일반 마스크를 쓰기 불편하다고 한다. 밸브가 달린 마스크는 1개당 2500원 정도로 훨씬 비싸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네 식구의 한달 마스크 값만 20만원 가량 든다. 그는 지난달엔 100만원대의 대용량 공기청정기를 구입했다. 집에 공기청정기가 두 대 있지만 최근 미세먼지가 극심해지자 방마다 한대씩 두기로 했다.

역대급 미세먼지가 덮친 가운데 “공기 마저 빈부 격차가 벌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유있는 사람은 고기능성 마스크에 공기청정기를 사용하지만, 저소득층ㆍ취약계층은 일회용 마스크를 살 여력이 없어 미세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의 한 지역아동센터. 학교를 마치고 온 아이 12명 중 미세먼지 차단용 마스크를 착용한 아이는 2명뿐이다. 김모(9)군은 "마스크를 왜 안 썼느냐 "는 기자의 질문에 “마스크를 꼭 써야 하는거에요?”라고 되물었다. 마스크를 써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지역아동센터는 저소득층 아동 방과후돌봄 시설이다. 이 센터에 공기청정기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공기 질 격차가 오래 가면 건강 격차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한국건강학회 이사장)는 “미세먼지 노출 양 격차가 쌓이면 폐암을 비롯해 각종 건강 악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소득에 따른 공기 질의 격차가 건강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미세먼지는 국가적 재난인만큼 저소득층 노인ㆍ어린이에게 마스크ㆍ공기청정기 등을 지원하는 게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마스크 가격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엔 유명 연예인 모델을 내세워 디자인을 강조한 마스크가 나왔다. 가격 인상 요인이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마스크는 최소한의 방어막인데 너무 비싸다. 제일 저렴한 것이 1인당 월 3만~6만원이다. 생필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가격을 내릴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6일 오후 “취약계층의 마스크 지원 등을 위한 추경 편성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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