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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대신 입으로 숨 쉬라?···'미세먼지 괴담'이 판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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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며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지역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닷새째 시행된 5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송도의 한 도심이 희뿌옇게 보이고 있다. [뉴스1]

연일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며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지역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닷새째 시행된 5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송도의 한 도심이 희뿌옇게 보이고 있다. [뉴스1]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입으로 숨을 쉬어라."

최근 미세먼지 고농도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미세먼지를 입으로 흡입하는 것보다 코로 흡입하는 게 더 치명적이다"라는 말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입으로 숨을 쉬는 게 더 안전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예방의학) 교수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 같다. 코의 기능 중 하나가 이물질을 거르거나 이를 방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재연 아주대 의대(예방의학) 교수도 "이해하기 어렵다. 코로 숨 쉬도록 진화한 몸인데, 당연히 코로 호흡하는 게 좋다"며 "코 호흡이 먼지도 걸러내고 온도·습도도 조절돼 좋다는 것은 기초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말도 안 된다고 지적하는 이 '괴담'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걸까.

중앙일보 취재팀이 추적한 결과, 지난해 11월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의 연구 결과 발표가 시발점이었다.

당시 연자력연 첨단방사선연구소 생명공학연구부 연구팀은 방사성 동위원소(Radioisotope·RI)를 이용해 '미세먼지 체내 분포 영상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28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몸속 미세먼지 한 톨까지 잡아내는 분자 영상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실험용 미세먼지 표준물질(DEP)을 기도로 투여한 뒤 시간 경과에 따라 얻은 단일 광자 단층 촬영 영상이다. DEP 투여 후 48시간이 지났으나, 다량의 미세먼지 표준물질로 구성된 미세먼지가 폐에 남았다. [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8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몸속 미세먼지 한 톨까지 잡아내는 분자 영상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실험용 미세먼지 표준물질(DEP)을 기도로 투여한 뒤 시간 경과에 따라 얻은 단일 광자 단층 촬영 영상이다. DEP 투여 후 48시간이 지났으나, 다량의 미세먼지 표준물질로 구성된 미세먼지가 폐에 남았다. [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연합뉴스]

쉽게 말해 방사선을 내는 미세먼지 입자를 실험용 쥐에 투입하고, 핵의학 영상 장비로 장기 내 미세먼지 축적량과 장기 내 분포 상태를 촬영한 것이다.

사용한 미세먼지 표준물질은 디젤자동차 엔진에서 배출되는 입자(DEP), 즉 지름 1㎛(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 미만의 미세먼지였다.

실험 결과, 입을 통해 식도로 들어간 미세먼지는 이틀 만에 몸 밖으로 빠져 나왔고, DEP가 이동 중에 다른 장기에 영향을 주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코를 통해 기도를 거쳐 흡입된 DEP는 이틀 뒤에도 60%나 폐에 쌓여 있었고, 모두 배출되는 시간은 일주일 이상 걸렸다는 것이다.

또, 배출 과정에서 소량의 DEP가 간과 신장 등 다른 장기로 이동하는 것이 관찰됐다.

미세먼지 표준물질의 체내 영상화 연구 과정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연합뉴스]

미세먼지 표준물질의 체내 영상화 연구 과정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연합뉴스]

이를 바탕으로 일부 언론에서 코로 숨쉬지 말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일부 독성학자도 입으로 숨을 쉬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원자력연의 실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5일 원자력연 박상현 박사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쥐를 갖고 실험할 때 코로 들어간 것은 호흡을 통한 것이지만, 식도로 들어간 것은 호흡이 아니라 미세먼지를 먹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박사는 "입으로 호흡해도 결국은 기도를 통해 폐로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미세먼지가 폐에서 혈관을 타고 몸 전체로 들어가고,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입으로 호흡했을 때, 입안에 묻어 있던 미세먼지가 음식을 통해 소화기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체내에서 잘 빠져나갈 수는 있다는 설명이다.

권호장 단국대 의대(예방의학) 교수는 "코나 입을 통해 들어온 공기가 결국은 기도에서 만나지만, 코를 거치면 코털이나 코의 점막에서 한번 걸러 줄 수 있으므로 더 낫다"고 강조했다.

서울 지역에 사상 처음으로 닷새째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5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 건물 외벽에 걸린 푸른 지구 그림 앞으로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지역에 사상 처음으로 닷새째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5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 건물 외벽에 걸린 푸른 지구 그림 앞으로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마스크도 적절하게 사용하면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마스크도 황사용 마스크를 사용해야 초미세먼지를 걸러낼 수 있고, 얼굴에 밀착해서 사용해야 한다.

다만, 호흡기 질환 등을 가진 경우 마스크로 인해 불편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의사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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