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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베트남 수출용이라며 보안구역 '3500t 쓰레기 언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6일 오후 충남 당진시 당진항내 야적장에 3500t의 불법 수출 쓰레기가 쌓여 있다. 지방의 한 폐기물처리업체가 베트남에 수출하려 반입한 쓰레기다. 김민욱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충남 당진시 당진항내 야적장에 3500t의 불법 수출 쓰레기가 쌓여 있다. 지방의 한 폐기물처리업체가 베트남에 수출하려 반입한 쓰레기다. 김민욱 기자

보안구역 안에 쌓인 '쓰레기 언덕'

지난달 26일 충남 당진항 내 한 야적장.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보안구역이다. 하지만 ‘ㅁ’자 모양으로 2~3단씩 쌓아 올린 컨테이너 방진·방음벽 안으로 ‘쓰레기 언덕’이 있었다. 지방의 A폐기물처리업체가 지난해 2월부터 몇 달간 ‘베트남 수출용’이라며 당진항 안으로 반입한 것이다. 무게만 3500t쯤 된다.

수출용 폐기물이라지만 현재 온갖 쓰레기가 뒤섞여 있는 상태다. 생리대·변기좌석·신발·노끈·페트병 등 각종 생활 쓰레기부터 토사·목재·콘크리트·비닐 등 산업 쓰레기까지 눈에 띄었다. 원래 형체나 품목을 짐작하기 어려운 쓰레기도 널렸다. 가장자리에는 압축한 폐기물 더미들을 옆으로 쌓아 올려놨는데 역시 재활용 선별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각 더미의 중간중간을 묶은 녹슨 굵은 철사 사이로 의류·캔·호스·포댓자루 등이 드러나 있다. 흙 등 이물질이 잔뜩 묻었다.

지난달 26일 오후 충남 당진시 당진항내 야적장에 압축된 채 쌓여 있는 불법 수출 쓰레기. 재활용 선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민욱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충남 당진시 당진항내 야적장에 압축된 채 쌓여 있는 불법 수출 쓰레기. 재활용 선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민욱 기자

"사실상 야적장 투기나 다름없어"

현장을 살펴본 당진시 폐기물관리팀 관계자는 “아파트, 철거 현장 등에서 나온 폐기물을 수집한 뒤 사실상 항만 야적장에 ‘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8월쯤 당진시는 야적장 운영사로부터 “수출이 가능한지 의심된다”는 민원을 접수하고 현장확인에 나섰다. 운영사는 악취·해충피해도 호소했다. 당진시는 검토 후 ‘수출 불가능 품목’으로 결론 내렸다.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법'상 폐합성고분자화합물이나 오니류(하수 또는 정수과정에서 생긴 침전물) 등 25개를 가능 품목으로 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당진시는 A업체에 폐기물의 적법처리 요구 내용을 담은 조치 명령을 알리면서 의견제출도 요구했다. 하지만 해당 업체 측은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몇 달간 의견제시를 미뤄오다 올 1월에서야 당진시를 직접 방문, 입장을 밝혔다. A업체 관계자는 “해외로의 수출이 가능한 품목”이라며 “당초 1만t을 맞춰 (베트남에) 수출하려 했는데 나머지 6500t을 반입하지 못해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충남 당진시 당진항내 야적장에 쌓여 있는 불법 수출 쓰레기. 헌 신발부터 노끈, 벽돌 덩어리, 토사 등이 보인다. 김민욱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충남 당진시 당진항내 야적장에 쌓여 있는 불법 수출 쓰레기. 헌 신발부터 노끈, 벽돌 덩어리, 토사 등이 보인다. 김민욱 기자

"수출 가능" 업체 주장에 환경부 '불가' 판단했는데...

사정이 이렇자 당진시는 환경부에 수출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환경부는 최근 ‘불법 수출 폐기물’로 최종 판단을 내렸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관계자는 “(당진항 야적장에 쌓인 폐기물은) 환경부에 수출 신고도 하지 않았으며 실제 수출도 불가능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에서 “수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쓰레기가 버젓이 항만에 쌓여 있다. 자칫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베트남에 쓰레기를 보내 ‘쓰레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는 상황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의 이런 불법수출 쓰레기는 모두 9곳, 3만4000t(지난 2월 현재)에 이른다. 방치폐기물 83만9000t, 불법 투기 폐기물 33만t에 비해 확인된 규모는 작지만, 국제 문제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불법 수출 폐기물 처리까지 쉽지 않아

하지만 불법 수출 폐기물의 처리는 쉽지 않다. 일선 지방자치단체가 폐기물의 처분 권한을 근거로 업체 측에 행정명령을 내리고 있지만, 처분에 불복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7월부터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9공구 야적장에 불법 수출 폐기물을 쌓아놨던 B업체는 인천 경제자유구역청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제기하는 등 반발했다. 해당 업체 역시 “수출용”이라며 5000t의 폐기물을 물류회사를 통해 반입했지만 페트병·노끈·어망·시멘트 덩어리 등 여러 쓰레기가 뒤섞여 있었다. 경제청은 지난해 11월 B업체에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B업체는 “인천경제청이 수출 가능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한 뒤 행정 행위를 했다”며 인천시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지난 1월말 청구는 기각됐다. 현재 송도 야적장 운영사가 직접 폐기물을 치우고 있다. 잔류량은 1500t쯤 된다.
지난달 26일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을 때도 포크레인이 굉음을 울리며 폐기물을 옮기고 있었다. 운영사는 물류회사에 처리 비용을 청구할 방침이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 9공구 야적장에 쌓여 있는 불법 수출 폐기물 모습. [사진 인천 경제자유구역청]

인천 연수구 송도동 9공구 야적장에 쌓여 있는 불법 수출 폐기물 모습. [사진 인천 경제자유구역청]

폐플라스틱 수출 신고제 허점 

일선 현장에서는 현 폐플라스틱 수출 ‘신고제’ 상황에서 불법 수출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전국 226곳에 116만9700t의 방치·불법 투기 폐기물이 쌓여 있는데 처리 과정에서 얼마든지 수출용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지자체 폐자원 담당자는 “국내 쓰레기 폐기 비용은 보통 1t당 15만원 정도 하는데 몰래 수출할 경우에는 운송비를 포함해도 절반 수준의 돈이면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9월까지 상대 국가의 동의를 얻어 폐플라스틱 수출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꾸는 방향으로 수출·입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현장 감시체계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달 26일 오후 인천 송도 야적장에서 포크레인이 컨테이너 성벽 안에 쌓인 불법 수출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심석용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인천 송도 야적장에서 포크레인이 컨테이너 성벽 안에 쌓인 불법 수출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심석용 기자

"수출 현장 전수 검사체계 도입 필요"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현장 검사원이 수출에 적합한 폐기물인지 확인하는 전수검사 체계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활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미화 자연순환연대 이사장은 “여러 쓰레기를 한번에 압축해서 배출하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려운 것”이라며 “재활용품이 폐기물화되는 과정을 진단하고 감시해 재활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 수출 폐기물을 쌓아놓은 것 자체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필리핀에 8570t의 쓰레기(국내 반입 1200t 포함)를 수출해 물의를 빚은 업체 등은 한강유역환경청의 수사 당시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법 위반 혐의만 적용됐었다. 이 업체는 국내에도 3400여t을 더 쌓아놓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선 폐기물 담당 직원들은 “(불법) 수출 목적으로 쌓아놓은 행위만으로도 무단 투기 수준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진·인천=신진호·김민욱·심석용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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