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드러내야 정통시로 생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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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견시조시인 이상범씨가 그의 시작생활 25년여를 되돌아보는 시조시집 『시가 이 지상에 남아』를 최근 출간했다(청학간). 이 시집에는 63년 『시조문학』지로 등단한 후 지금까지 지어온 6백여편의 시조중 1백15편을 가려 뽑았다.
『시조는 명칭 그대로 한시대를 담아내는 시인데도 현실을 외면하고 순수서정이나 복고조의 노래로 치우쳐옴으로써 시조를 약화시켰다고 봅니다. 치열한 시대정신으로 현실을 수용할 수 있을때 시조는 우리의 정통시로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시인의 말대로 그의 시조에는 분단상황·서민의식등 시대정신이 배어있다. 그러나 그는 언어의 고도한 압축에서 빚어지는 이미지·상징등으로 그것을 담아내고 있다.
『바람과 햇살들이/허리떠를 물고 앉아/흩어진 머릿결에/한참 빗질을 하다가/빈 들에 얹힌 햇살을/잘게 잘게 썰고 있다.』
들풀, 즉 서민들의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그리고 한을 형상화하고 있는 「들풀소사」연작중 한부분이다. 섬세한 감각, 발랄한 언어와 리듬으로 복고적 인상이나 의미의 무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끈질기고 친근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이미지와 리듬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러한 그의 시조는 적극적인 현실의 수용 의지와 시조의 정형성을 자신의 목소리로 융합시켰다는 평이다.
35년 충북예천에서 태어난 이시인은 개인 시서화전을 네씩이나 개최할 정도로 서화에도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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