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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연방최고회의에 한국계 2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볼셰비키혁명 72년만에 사상 처음 서구식 선거에 의해 구성된 소련 인민대표회의. 지난달 말 TV생중계로 소련인에게 새 모습을 드러낸 인민대표회의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데모크라티치아(민주화) 의 열기를 실감시켜준 바 있다.
인민대표회의 대의원 2천2백50명중 한국계 동포는 4명(모두 선출직).
이중 상설국회격인 연방최고회의의원(5백42명)에 이들 중 2명이 당선됐다. 미국에선 한국계 동포가 고작 하원선거에 출마하는 게 화제가 되는 것에 비해볼 때 재소 한인의 정치·사회적 진출은 괄목할 만 하다.
연방 최고회의의원인 김영웅씨(48). 시베리아의 옴스크시에서 당선됐다. 옴스크종합대 교수. 지난번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모스크바 방문 중 인민대표회의에 참석중인 그를 만나보았다.
대의원선거 당선을 축하한다. 먼저 정계에 진출하게 된 동기부터….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단체인「즈나니예」(지식보급협회)의 추천을 받아 선거에 나갔다. 이르쿠츠크 종합대 역사학부를 졸업하고 학사원에 들어가 교수과정을 이수했다. 77년부터 옴스크시립 종합대의 초청을 받고 거기서 개발도상국의 사회·정치적 발전문체를 강의했다. 강의와 함께 사회활동을 전개한 것이 인민들의 신임을 받았고 이 덕분에 후보로 추천되고 당선된 것 같다.
-선거구에 한국계 동포가 많이 살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유권자 25만명 중 우리 동포는 20명 정도다. 90%가 러시아·우크라이나·백러시아 계다. 14명이 출마, 이중 선거인단에 의한 예비선거에서 3명이 남았고 유권자의 62%지지표를 얻어 당선됐다. 다른 2명은 20%정도 얻었다.』(김씨는 사할린 태생. 고향이 함흥인 아버지가 일제시대 강제로 징용돼 사할린으로 옮겨왔고 무국적자로 있다가 58년에야 소련국민이 됐다고 했다)
-인민 대표회의를 사상 처음 TV로 생중계 하는 등 소련 전체가 여기에 매달리고 있는 듯한데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봐야하나.
『인민 대표회의는 현 단계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TV 생중계 얘기가 화제로 이어지자 그는 한국도 국회 본회의를『생중계 해보라』며 웃으며 얘기하기도 했다.
-가장 격렬히 토론된 내용은 무엇인가.
『연방 최고회의가 형식적인 기관이 아닌 실질적인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당과 인민회의의 관계는 상당히 미묘해지는데….
『당은 국가발전의 전략적 방향을 정하고 연방 최고회의는 그것을 심의해야 한다. 당과 최고회의의 관계가 재 설정되는 과정이다. 과거엔 당의 제안이 심의 없이 받아들여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당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의원 중 86%가 당원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전망은 어떤가.
『전망이 있기 때문에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는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속도에 대해 일부에선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데.
『사회현상에서 볼 때 일부 층은 신속히 추진하라고 주장하고 다른 일부는 조심성 있게 진행하라는 주장을 편다. 남조선(한국) 에 급진파도 있고 보수파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씨에게 불쑥『북한은 유독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는『북한 내부문제』라고 웃으며 받아넘겼다(미묘한 문제라는 시사 같았다).
-한국계 동포의 정치적 진출이 상당한 것 같은데.
『나 이외에도 다른 3명의 대의원이 있다. 모두 우리 동포가 별로 살지 않는 지역에서 치열한 선거전을 통해 당선됐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러시아 공화국 내 두바자치 공화국에서「최·콘스탄틴·니콜라이비치」(결핵병원 원장) ▲우즈베크 공화국에서「조·와실리·이바노비치」(기업소 지배인) ▲키르기스 공화국에서「정·라지」(면방공장 지배인)씨 등이다.
-시베리아의 한국기업 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양국의 경제적인 교류에 큰 관심이 있다. 실무적인 교섭을 추진하기 위해선 제약요소를 없애야 한다. 옴스크지방엔 중국·일본과의 합작회사가 있다.』 <모스크바=박보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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