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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세대는 일제강점기에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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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5000만 명 중 2000만 명보다 한국에 더 살았다. 세금을 낸 걸 기준으로 삼는다면 웬만한 한국인 이상일 게다.

35년 한국서 산, 한국이 ‘선택한 고국’ #언론인 출신 영국인 마이클 브린 #민족주의적 성향 #“한·일의 민족주의적 사고는 #유럽인들에겐 위험해 보일 수도” #한·일 관계 #“역사 인식 객관적 아냐 #현실 인정하고 더 용서해야 #정체성을 일제 강점기 아닌 #1987년 민주화에서 찾았으면” #민심 작동 방식 두곤 #“JP가 민심 정치인이었다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못해 #민심 때로는 옳지 않을 수도 #그때 리더십이 저항할 수 있어야”

전 주한 외신기자클럽 회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 마이클 브린이다. 가디언·더타임스·워싱턴타임스 등에서 일하며 1982년 이래 2년 정도를 제외하곤 한국에 사는, 한국을 ‘고국으로 선택(chosen home)’한 이가 됐다. 그 사이 대통령이 된 YS(김영삼)·DJ(김대중)은 물론 북한의 김일성도 만났다. 이제는 글로벌 홍보 컨설팅 회사의 대표다.

그는 82년 “낙후한 매판적 신식민지”를 상상하며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그러나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국가를 보았고 스스로 눈에 씌웠던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기적”이라고 본다. 다만 여느 사회가 그러하듯, 개선할 점이 있다고 봤다. 특히 역사 인식과 민심 문제였다.

한국인들이 현재의 현실에도, 편견에도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하고 조금 더 용서해야 한다고 본다.

민심이 때때로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리더십이 저항해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기자에게 한 말이다. 최근 『한국, 한국인』을 발간한 그를 만났다. 2017년 『The New Koreans』의 한글업데이트 버전이다.

『한국, 한국인』의 저자 마이클 브린 [사진 브린]

『한국, 한국인』의 저자 마이클 브린 [사진 브린]

한국인은 민족주의적이긴 하나 민족주의적인 만큼 애국적인 아니라고 했다.
“당연히 한국인은 한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자국의 이해를 우선하는 민족주의적 성향만큼은 아닌 것 같다. 연로한 한국인이 ‘한국전 당시 미국에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한국이 그다지 살기 좋은 곳이 아니어서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충성심을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 

그는 저서에서 한국 민족주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꼽았는데 ^단일한 핏줄에 대한 믿음인 민족성 ^정의감을 부여하곤 하는 피해의식 ^자신감의 결핍이다.

지금의 한국인이라면 다를 수 있다.
“덜 그럴 것이라고 본다. ‘헬조선’이란 말과 달리, 한국에서의 삶은 과거보다 크게 나아졌다.”
사실 서구적 맥락에선 민족주의가 부정적 뉘앙스다.
“유럽에서 민족주의는 분쟁과 전쟁, 불행을 불러왔다.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위험하게 보인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떠올리게 한다. 우린 반(反)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에선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는 민족주의적 사고가 유럽인들에겐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한국인의 역사 인식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인들이 일제강점기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라고 보나.
“객관적인 건 아니라고 본다. 이해할만한 일이다. 한국인들은 고통을 받았는데 오늘날까지 일본이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여긴다. 영국과 아일랜드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동시에 한국인들이 한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자유 시장경제 민주주의를 하는 두 나라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실패하고 있다는 점도 얘기하고 싶다. (자유 시장경제 민주주의 국가란 점에서 한·일은) 가까운 나라(ally)다. 민주주의 지지자인 내가 단순하게 설명하면, 한국과 일본, 대만은 민주주의 국가다. 중국은 박정희가 이끄는 한국, 북한은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과 같다. 중국과 북한이 종국엔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일본보다 중국이 (한국과) 협력국이라고 보는 건 고대사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현대의 관점은 아니다.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냐? 그건 잘못된 표현이다. 다만 더 용서하는 자세가 돼야 한다고 본다. 기자로 취재해보니 김대중(DJ) 세대는, DJ도 포함해서, (일제 강점기에)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지 않았다. 그 이후 세대가 그런 것이다. 교육 때문이라고 본다. 나는 한국인들이 현재의 현실에도, 편견에도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하고 조금 더 용서해야 한다고 본다. 일제강점기에 대해선 뒤로 제쳐놓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정체성을 찾기 위해 너무 과거(일제강점기)로 간다. 여러 의미에서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은 1987년 시작됐다고 본다.” 
2006년 한국 정부가,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한국인 전범들을 사면한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더라.
“한국 정부는 2차 대전 전범에 대해 사면을 요청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면할 위치에 있지 않다. 한국 정부가 ‘그들도 한국인이 (일제의) 희생자’라고 판단해서 사면했을 순 있다. 그런 논리라면 일본군 경비원도 빈곤의 희생자일 수 있는데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는 희생자들이 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권한을 남용한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갔다가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를 만난 일이 있다. 그는 나에게 ‘당시 포로수용소에 있던 한국인 간수들이 일본인 간수들보다 포로들을 더 험하게 다뤘다’고 하더라. 상황은 ‘한국인들은 선, 일본인들은 악’이란 식으로 단순하지 않다.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일본을 국빈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8일 도쿄 영빈관에서 양국 외무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협정서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을 국빈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8일 도쿄 영빈관에서 양국 외무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협정서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우리의 과거사 인식이 선별적일 수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건을 언급하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학자를 명예훼손으로 넣었던데 반민주주의적 행동이다. 지식인들의 시장에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여중생 두 명이 숨진 사건을 둘러싼 민심 흐름에도 비판적이었다.
“민심은 정말 문제다. 물론 민심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사람들에겐 감정도, 의견도 있다. 대다수 사람이 유사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런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한국에서의 문제는 그러나 정치인과 정부가, 사법부나 언론까지 포함해서, 민심을 일종의 리더로 여기고 그걸 수용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건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민주주의를 사람들이 ‘당신이 나의 지도자’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군중이 직접 통치해선 안 된다. 민심은 때때로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리더십이 저항해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한국 발전의 시작이었다. 국민은 반대했으나 김종필은 이에 맞섰고 설득하려 했다. 김종필이 ‘민심 정치인’이었다면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그와 같은 리더십이 없다. 1965년에 한국 정부는 일본과 관계 정상화를 하는 조건으로 일제 강점기에 대한 사과의 표시로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다. 그 당시 정부는 이 보상금을 위안부를 비롯한 희생자들에게 제공하는 대신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사용하기로 하고 그렇게 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한국 정부는 줄곧 일본을 불필요하게 적으로 만들고 있는데 이는 국익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DJ를 제외하곤 그랬다.
“그렇다. DJ는 달랐다.”

그는 대통령이던 DJ가 한·일 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한 점을 거론했다. 실제 DJ는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한·일 파트너쉽 공동선언’을 통해 전면적 교류·협력을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언엔 일본 총리의 과거사 반성과 사죄가 처음으로 담겼다.

한국인들은 이탈리아인을 제외하곤 자신들의 지도자에 가장 비판적인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했던데.
“주기성이 있다고 들었다. 2000년대 DJ에 대한 전기를 쓰고 싶어 할 때 만난 학자가 노태우 대통령 이래 그런 패턴이 있다며 'DJ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의 설명으론 박정희가 한국 정치에 드리운 그림자라고 하더라. 사람들은 물론 지도자 자신이 박정희와 같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는 첫째 독재자였고 둘째 18년간 통치했으며 셋째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였다. 지금은 민주주의 국가며 5년 통치한다. 실제론 첫해엔 배우고 마지막 해엔 레임덕이니 3년이다. 이미 큰 나라가 됐다. 그런데도 한국 지도자들은 민주주의적 리더십의 한계에 대해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 잘못이다. 사람들이 잘못된 기대를 하고, 내 삶이 좋아지지 않으니 정부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대단히 감정적인 정치적인 판단을 한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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