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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빈곤층 소득 18%나 감소…소득주도 성장 역효과 아닌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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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4분기 소득 분배가 사상 최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하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은 1년 전보다 17.7% 감소한 데 비해 상위 20% 가구는 10.4% 증가해 양 집단의 격차가 5.47배에 달했다. 통계청이 어제 내놓은 ‘2018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 부문)’ 결과다.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악 기록 #최저임금 인상 따른 일자리 감소 탓 #선의보다 현실에 기반한 정책 절실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킨 주범은 다름 아닌 일자리였다. 통계에 따르면 상위 20%인 5분위와 상위 40%인 4분위 가구는 평균 취업자 수를 각각 2.4%와 1.1% 늘렸다. 반면에 하위 20%인 1분위와 하위 40%인 2분위는 가구당 취업자 숫자가 각각 20.9%와 7.6% 감소했다. 늘어난 상용 근로자를 상위 가구가 주로 차지하고 하위 가구는 줄어드는 임시직에서 밀려나는 양상이 뚜렷했다고 한다. 이 결과 소득 5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14.2% 증가했지만 1분위 가구는 36.8% 급감했다.

이런 결과는 ‘함께 잘사는 포용 국가 실현’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많지 않은 성장의 결실을 상위 가구가 거의 독식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미 고령화와 경기 침체로 신음하고 있는 하위 가구는 일자리에서 소외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부 지원에만 기대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정부의 재정 여력은 물론 경기 전반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신호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정부 지원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가구의 근로소득이 6.2% 늘어나는 사이 정부 보조금과 연금 같은 이전소득은 11.9% 증가했다. 하지만 월평균 이전소득은 52만원이고 근로소득은 311만원으로 차이가 크다. 이전소득보다 근로소득을 늘리는 게 개별 가구와 전체 경기에 이롭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미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이 임시직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를 크게 줄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도 이번 조사에서 하위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이 크게 줄고 2분위에서 1분위로 떨어진 자영업자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을 하위 자영업자와 저소득 가구가 뒤집어썼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려면 결국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일자리를 확대하고 안정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장의 역할이다. 정부는 개별 주체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큰 그림만 제시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 온 소득주도 성장은 정책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용주 등 경제 주체를 압박하고 정부 예산은 물론 민간의 돈까지 털어넣게 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방식으론 단기는 몰라도 장기적인 효과를 보기 어렵다. 고소득층은 물론 저소득층의 꿈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경제 주체가 알아서 적절하게 자원을 분배하는 선순환 구조를 복구해야 한다. 분배를 개선하려면 민간 고용과 투자를 늘려 일자리 지표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는 민간 전문가들의 지적을 정부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