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서 한국상품 무역상담회] 총성속 바이어 수백명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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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국 기업인들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지난 27일 무역상담회를 열었다.

전후 바그다드의 첫 무역상담회를 한국인들이 연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전략적으로 파견한 시장개척단의 상담회에는 건설장비.발전기 세트.벽돌 성형기계.금고.의료용 살균기.자동차 부품 등 전후 복구 특수가 예상되는 분야에 한국의 설비.플랜트 수출업체 12개사가 참가했다.

바그다드 남부의 바빌론호텔에선 수백명의 바이어가 몰려와 한국 기업인들과 열띤 상담을 벌였다.

이날 오전 7시 연합군 임시행정처 직원들이 숙소로 이용하는 라시드호텔에 로켓 추진 유탄이 세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간간이 총성이 들리는 불안한 상황도 이라크 바이어들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이라크인들은 혼란한 상황과 테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현지를 찾은 한국의 이라크 시장개척단의 적극성에 경의를 표했다.

의료기 등을 수입하는 아딜 알라위(54)사장은 "치안이 불안해 대부분의 외국기업이 이라크 진출을 망설여 우리가 직접 외국에 가거나 주변국 중간 상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국 기업인들이 여기까지 직접 와주니 참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농업.건설.발전.수송 등 여러 업종의 기업을 거느린 사미 압바스 그룹의 마흐무드 마흐디(42) 홍보실장은 "우리의 사업분야에 맞는 한국의 대기업과 어떤 형태로든 협력하고 싶다"며 회사 소개서를 건냈다. 그는 "공장부지.자본.인력과 40년 이상의 사업 경험이 있다"며 "한국기업이 생산시설 설치와 관리만 맡아주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인들은 전날 KOTRA 쿠웨이트 무역관 김유정(45)관장, 바그다드 무역관 김규식(43)관장과 함께 쿠웨이트 국경을 통과해 이라크로 들어와 어렵게 바그다드로 이동했다.

우선 국경에서 한국군 서희부대가 제공한 차량으로 부대 주둔지인 나시리야까지 이동했다.

그 다음에는 민간 버스를 대절하고 AK-47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이라크인 10명과 동승해 바그다드로 행했다. 버스 앞뒤에는 무장한 이라크 청년 10명이 두대의 지프에 나눠타고 호위를 맡았다. KOTRA 바그다드 무역관이 한국 담배를 수입하는 현지 회사에 요청해 민간 경호원을 동원한 것이다.

이런 어려운 걸음을 한 한국 기업인들도 기대 이상의 반응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대형 발전기를 생산하는 부국전기공업의 곽기영(49)사장은 "이곳의 전력난이 예상보다 심각해 이라크인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구매의사를 나타내고 있다"며 놀라워했다.

병원용 멸균장비 생산업체인 휴먼메딕의 윤병수(36)과장은 "가족들이 출장에 반대해 망설였지만 이라크인들의 적극적인 자세를 보니 의욕이 솟는다"며 "경쟁사인 미국 기업이 이곳에 이미 와있어 놀랐는데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전문 제조업체인 UKB의 관계자는 전쟁으로 거래가 중단된 이라크 기업의 대표를 이번 상담회에서 만나 수출 재개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KOTRA 바그다드 무역관은 이번 상담회에 3백66개 이라크 기업을 초청했으며 이날 6천8백만달러의 상담실적과 3천2백만달러의 계약실적을 거뒀다고 밝혔다.

바그다드 무역관 김규식 관장은 "이라크에서 한국 상품의 인지도는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며 "전쟁으로 막혔던 양국 기업의 직접교류가 활성화하면 대(對)이라크 수출이 크게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바그다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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